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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소 Mar 23. 2023

과거의 '검색'과 미래의 '선택'

30년 전 삐삐에 대한 추억으로 소환된 미래 넋두리

"OO 씨는 삐삐 알아요?"

대학 졸업 후 갓 입사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삐삐를 본 적이 없단다. 얘긴 들어봤는데 그런 게 왜 필요했는지 궁금해한다. 개인별로 호출번호가 주어지면서 직접 소통이 가능하게 된 혁신적인 물건이었다고 얘기하니 공감을 못한다. 숫자로 8282, 3535를 보내 마음을 전달하고 음성사서함에 혼자 주절주절 떠들었다는 소리에 다들 빵 터진다. 모토로라 스타텍을 목에 걸고 다니면 힙하다는 얘길 들었다고 하니 모토로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라디오에 나오는 가요들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었다는 얘기는 너무 오래된듯하고 지금 젊은 직원들은 아이리버 MP3기계도 본 적이 없다.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시기의 사회적 충격도 잘 모른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조금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젊은 친구들이 오래된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과거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으니.


30년 전에 지금의 생활모습을 예상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직원들과 과거 얘기를 하면서 앞날을 예측해 보았다. 앞으로 30년 뒤, 내 앞의 젊은 직원들은 후배직원들을 앞에 앉혀놓고 2023년의 모습을 어떻게 얘기할까? '나 때는 그랬어~'라고 얘기하면 2053년의 젊은이들은 '우와~' 하고 비슷한 반응을 보이려나. 그때는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직장에서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온라인에서 만나고 있는 거 아냐....


직원들과 얘기를 하면서 요즘 화두인 챗GPT로 대화의 주제가 옮겨갔다. 인공지능의 무서움과 효용가치에 대해 각자 아는 만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회서비스영역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위안의 말을 건넨다. 사회적 이슈에 별 관심이 없는 직원들은 챗GPT가 뭔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한다. 챗GPT가 했다는 인류멸망의 말들,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과 글들의 예시를 금방 찾아내어 읽고선 이런저런 얘기에 동참한다. 지금이야 챗GPT에 여러 프롬프트를 활용해 검색과 창조의 작업지시를 하지만, 30년 뒤엔 이런 행위가 인공지능한테 필요할까 싶다.   


하드웨어의 발전과 어디서건 접속가능한 통신기술로 무언가 궁금해지면 바로바로 검색을 하는 시대다. 각자 개인별로 번호가 생겼고 그 번호를 기반으로 한 통신기기를 활용해 정보가 모아진 인터넷을 검색한다. 몇 번의 검색뒤에 원하는 바를 이뤄낸다. 2023년은 손 안의 휴대단말기를 갖고 바로 '검색'과 '선택'을 통해서 정보인식을 한다.  30년 뒤엔 어떨까? 2053년엔 피부나 눈 등에 단말기로 연결되는 포인트를 갖거나 개인별로 인공지능 칩을 하나씩 휴대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거대 인공지능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 '검색'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보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들만 실시간으로 '취득'해서 듣고 느끼면 될 일이다. 


그때에 가면 '나 때는 말이야~'가 필요 없고 과거를 얘기하는 대화방식이 지금과는 현격하게 다를 것 같다. 검색이 필요 없어진 미래시대에, 인공지능을 하나씩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떤 대화를 하려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 젊은 직원은 여전히 집얘기, 돈 모으는 얘기, 최신 휴대폰기기 출시일,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 등의 관심사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사람관심사는 바뀌지 않는 거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얘기하다 보면, 결국 누가 최신정보를 구체적으로 많이 알고 있느냐가 대화의 핵심이다.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주면 더욱 신뢰도가 높아지고 대화가 풍부해진다. 모르거나 이해가 안 되면 바로 검색한다. 대화를 주도하는 건 직장에서 나이와 직위가 결정할 때도 있지만, 결국 경험의 축적여부와 풍부한 정보의 소유여부가 직장에서도 인정될 것이다. 인생에서 주도권도 정확하고 밀도 높은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쥐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니 앞으로 30년 뒤엔 누구의 인공지능이 더 정확한지, 어떤 인공지능이 더 많은 콘텐츠를 담고 있으며 더욱 다양한 이미지와 추상적인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빠르게 선택하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처럼 비싸고 빠른 핸드폰이 아니라 더욱 많은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인공지능을 소유하는 게 개인들 삶의 목표가 되어버릴지 모를 일이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인공지능'이 설계해준대로 살아가는 '인격데이터'가 될 가능성도 보인다. 

지금도 내 검색 알고리즘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지 않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가 중도는 줄고 양극단의 사람들만 많아지고 있다. 좋거나 싫거나, 바르거나 틀리거나, 내편이거나 적이거나다. 보고 싶은 것만 보니 반대되는 상대방의 의견엔 관심이 없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재도 쉽지 않고 가운데는 내 편이 없다. 30년 뒤엔 이 양극단의 현상이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아직 인공지능이 중재자나 조정자의 역할을 하긴 어렵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 인간의 감성과 융통성, 상황에 따른 변수들을 스스로 판단하여 결과치를 보여줄 수 있을까? 30년 뒤 극단의 성향을 보일 지금의 영유아들에게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할 이유가 보인다. 더불어서 배려와 존중, 나눔과 헌신에 특화된 인공지능을 만들어야 인류가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점심밥상에서 삐삐얘기로 웃음꽃을 피운 게 30년 뒤 어떤 대화로 나타날지 갑분싸 글이 진지해졌다. 97년 대학생 때 학술자료를 인터넷에 올리고선 '이제 전 세계에서 우리 학과의 학술자료를 볼 수 있어요'라고 얘기했는데, 대부분의 선후배들이 이해를 못 했던 기억이 난다. 30년 전까지 갈 것도 없다.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우리네 삶이 이렇게 바뀔지 누가 알았으랴!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를 예측해 보는 재미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1년 앞도 못 내다보는데 30년 내다보며 글을 쓰는 것도 우습긴 하다. 어쨌든 배려와 존중, 나눔과 관련된 영역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려나. 기술이 발전할 수록 이러한 인성교육을 사람들에게 더욱 많이 제공할 것! 동시에 인공지능도 배려/존중/나눔과 관련된 자연어 학습을 더욱 많이 할 수 있게 할 것! 이렇게 사회변화를 이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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