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하곤 베트남을 다녀왔어. 언니랑은 일본에 다녀왔고. 우리 막내는 아빠랑 어디 가고 싶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곧 사춘기에 들어갈 아이들에게 아빠는 여행을 제안했다. 첫째인 아들은 친한 사촌형과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하여 조카를 데리고 아들과 함께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 다녀왔다. 나 혼자 소외될까 봐 아내를 짝꿍으로 데려갔고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다. 오빠바라기였던 둘째 딸아이는 오빠가 가고 싶은 곳으로 모든 가족이 같이 여행을 가길 바랐다. 오빠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보고 싶어 했고 우리 가족은 일본 오사카에 가서 해리포터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둘째는 무서운 것을 잘 즐기지는 못했지만 일본 여행지의 재미난 감흥들을 잘 간직하여 지금도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한다.
막내인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빠는 막내한테 아빠엄마와의 여행을 기대하며 다시 어디로 여행 가고 싶은지 물었던 것인데 돌아온 답은 이랬다.
"싫어."
육아를 훌륭히 잘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크게 힘든 것은 없었다. 첫째와 둘째는 아이 때 순해서 자기주장을 강하게 고집하거나 떼를 써본 적이 거의 없다. 대형마트의 장난감 코너에 가서도 갖고 싶은 것을 한참 들여다 볼뿐, 갖고 싶다거나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둘째가 여행지에서 종종 삐치는 것 말고는 육아 중 크게 감정적으로 힘들게 한 기억이 없다.
같은 부모의 피를 받아 한 배에서 나온 아이들인데 성향이 다 다르다. 셋째인막내 딸아이는 어릴 적 고집이 너무 세서 4~5살 즈음 가족들이 힘든 시기가 몇 번 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비명이 섞인 고함을 지르며 울어대는데, 이럴 때면 우리 부부는 물론 아이 셋을 키워주신 친할머니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여행지에서도 변함없이 관광하러 숙소에서 나갈 때나 밤에 잠이 들 때 종종 비명 섞인 울음을 고래고래 고함치듯 울어대는데 아동학대로 해외 현지에서 신고당할까 봐 두려워할 정도였으니,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폭력을 절대 안 된다며 아이들 몸에 손 한번 안 댔는데, 막내딸아이는 엄마한테 몇 번 엉덩이를 맞았다. 발악에 가까운 울음을 목소리가 쉬어라 울어대니 일상생활에서, 여행지에서 참기가 쉽지 않았다. 엉덩이를 몇 번 때리거나 어르고 달래는 게 소용없다는 것을 안 뒤, 제풀에 지쳐서 울음을 그칠 때까지 놔두는 방법을 활용하였다. 나중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무릎을 꿇곤 셋째를 꼭 안아주었다. 처음엔 발악을 하는 막내한테 주먹으로 맞기도 하고 이빨에 물리기도 했지만, 부모의 노력 덕분인지 아이의 저항은 30분에서 20분으로, 다시 10분으로 점차 줄어들었고 안아주면 바로 울음을 그치게 되었다. 비명 섞인 울음은 6살 되던 즈음 사라졌고 여행지에서도 오빠 언니와 함께 재미난 여행일정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일도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나중이 되면 모두 추억거리가 된다. 다소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막내는 여행지에서 잘먹고 잘놀며 잘자는 무한긍정의 아이였다.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렸을 적부터 세상 문물을 체험하고 다녔다.
첫째는 의젓하고 둘째는 욕심 많으며 막내는 귀엽다고 하였던가! 막내 딸아이는 가족들의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여행지에서도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오빠와 언니가 체험하는 것들과 보는 것, 먹는 것들을 함께 하면서 나이에 맞지 않게 속으로 성숙함을 쌓아나간다. 듣고 보며 생각하는 것들이 자기의 언어습득과 표현속도를 앞서 가다 보니 생각의 성숙함은 자기가 인지 못한 채 안으로 쌓여 나가는 것이다. 4남매의 막내였던 나도 내면의 깊은 성장을 느끼면서 자라왔다. 막내들이 생각이 깊은 것은 어릴 때부터 형제자매들의 '꺼리' 들을 함께하면서 촉촉이 젖어드는 영향이 크다. 우리 집 막내도 여행지에서 10년간 이런 것들이 하나씩 겹겹이 쌓인듯하다. 사춘기가 오기 전 아빠와 엄마는 막내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지만, 막내는 오빠와 언니 없으면 여행이 재미없을 것을 안다. 그러니 부모님과 여행은 싫고 더욱이 아빠와의 여행은 단호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예전 글에서 내 아버지와의 여행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월출산에 갔었던 등산의 기억이라고 밝혔는데, 일찍 돌아가신 아빠와는 여행의 기억이 많지 않다.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는 북한 출장 시 모시고 갔던 여행겸 출장, 그리고 중국 베이징을 여행사 패키지로 단 둘이 갔던 적이 있다. 아무나 가지 못하는 평양방문을 아들 덕에 해본다며 어머니는 신기해했고 처음 참여해 본 베이징 패키지여행은 어머니와 많은 기억거리들을 쌓을 수 있었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늙은 모친과 단둘이 여행을 하기는 쉽지 않을 터인데, 한시라도 젊을 때 부모님과 여행을 하면 다른 의미들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 손에 이끌려 여행을 하는 것과 내가 부모님 손을 잡아 이끌어 여행을 하는 기분은 다르다. 금방 흐르는 시간 앞에서 막내딸이 같이 여행 가자고 할 때, 내가 'NO'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내딸은 지금은 아빠와 혹은 엄마와의 여행을 거절했지만, 언젠가 성인이 되어서 둘만의 혹은 부모님과의 여행을 제안해 올 수 있을 것이다.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무심하지만 속 깊은 막내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모습에 비추어 미래의 막내 마음씀이 예상된다. 막내딸의 제안에 흔쾌히 응할 수 있도록 돈도 더 벌어놓고 아프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해야 할 터이다. 어렸을 적에 내가 데리고 다닌 막내는 귀여웠을 테지만 다 큰 막내딸을 따라다닐 때는 1만 배 더욱 귀엽지 않을까나?
막내딸의 단호한 거절 뒤에 코로나 등으로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다. 요즘 한창 사춘기인 막내딸에게 다시 한번 가족여행에 대해 물어보니 되돌아온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