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마음속으로 GOGO~

식스센스여행기 14 - 딸아이 입장에서 쓴 식스센스 여행기 / 둘째편 2

by 구르는 소

3남매의 둘째란 누구인가?


세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가 곧 임종을 앞두고 자식들을 차례로 불러 모았다.

첫째야. 나는 곧 죽게 되었으니 내 재산 전부인 100만 원의 절반을 너한테 주겠다.

첫째는 감사해하면서 방을 나갔다.

두 번째로 들어온 둘째에게도 똑같이 얘기했다.

둘째야. 나는 곧 죽게 되었으니 내 재산 전부인 50만 원의 절반을 너한테 주겠다.

둘째는 감사해하면서 방을 나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셋째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셋째야. 나는 곧 죽게 되었으니 내 재산 전부인 25만 원을 너한테 주겠다.


사람마음이란 것이 전 세계적으로 모두 비슷한지 둘째 자녀의 마음가짐을 생각해 보면 그 공통성에 놀랍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하다. 첫째에 밀리고 막내에 치이는 둘째의 숙명이란! 3남매 중 둘째란 과연 누구일까?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살까? 3명의 자녀를 키우는 집은 대체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터인데, 3남매의 자녀들 속 둘째는 대부분 서운하고 서럽고 아쉬운 마음들을 품고 산다. 우리 집 예쁜 딸아이 둘째도 비슷하게 컸다.

사본 -20160802_112252.jpg 발리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교실에서 둘째 아이가 요리하는 모습. 여행 중 뭐든지 직접 해보고 싶어 하는 당찬 아이였다. 자립심 강한 딸아이로 예쁘게 커주었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는 최대한 자식들한테 공정한 재산분배를 하려고 했다. 세상에 태어난 순서대로, 자식 서열대로 재산의 절반씩을 떼어 줬으니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공정하다. 100만 원을 3 등분해서 나눠줄 수도 있겠지만, 먼저 태어난 첫째와 더 오랜 시간을 보냈고 나이 많은 첫째가 돈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터이다. 첫째가 남은 가족을 돌봐야 할 때 첫째 자녀로서 의무감이 더 들 수도 있겠다. 아버지로서 현명한 판단을 한 셈이다.

첫째는 아쉬울 게 없는 재산배분이다. 어차피 동생들과 재산을 나눠가져야 하는데 전체의 33%가 아니라 먼저 절반을 나눠 받았으니 더 큰 이익이다.

막내는 크게 아쉽지 않다. 33만 원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25만 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으니 체감이 크지 않다. 게다가 위로 형제들은 재산의 절반씩을 받았는데 자기는 아버지의 남은 '전 재산'을 받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사랑이 감격스럽다.

둘째는 제일 억울하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바로 위 형제가 50만 원을 가져갔고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25만 원을 받았다. 동생은 나눠줄 대상이 더 이상 없을 테니 결국 동생 몫과 자기 몫은 같을 것이란 생각에 억울하다는 생각뿐이다. 유산을 받았음에도 기쁘기는커녕 아쉽고 서운하고 서러운 생각만 들뿐이다.




둘째인 딸아이는 키우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자기주장을 확실히 펴면서 오빠와 동생을 잘 챙기는 당찬 아이였다. 또래애들보다 공부도 괜찮게 하고 뛰어난 피지컬 덕에 운동실력도 있어 부모한테 많은 기대와 기쁨을 주었던 아이였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가서도 본인 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짐도 꼬박꼬박 잘 챙겨주고 한번 지나간 길은 잊지 않아 여행길잡이 역할도 훌륭히 수행해 주었다. 10여 년간 이어진 가족 해외여행일정은 둘째 아이 덕에 큰 사고 없이 진행되었으리라.

IMG_0315.JPG 포르투갈의 골목길을 걸을 때 딸아이는 뒤에서 내가 빙빙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한번 지나쳐간 길은 잊지 않는 명석한 딸아이다.


다만, 여행 중 둘째가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누가, 무엇이 자기의 마음과 정신을 헤집어 놓았는지 둘째는 가끔 여행지에서 알 수 없는 투정과 신경질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뾰로통한 얼굴에 잔뜩 앞으로 나온 뾰족 입술을 내밀곤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으며 여행일정에 참여하는데 인솔자인 아빠가 감내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영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행지의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있는 나한테 바로 풀장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아이가 셋에 모친까지 있는 여행객의 리더이다 보니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체크인하랴 방 이상유무 점검하랴 짐정리하랴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수영장 GOGO를 외치는 딸아이 성화에 수영장의 물놀이를 최우선으로 두려고 하였다.


짐정리 후 바로 수영장에 들어갈 때면 괜찮았지만 때때로 가족들이 배가 고파서, 혹은 여행지의 관람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일정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문제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오늘의 물놀이는 내일로 미뤄야겠다고 하면 아들과 막내딸은 대수롭지 않게 알겠다고 했는데, 이 둘째 딸아이는 바로 삐치는 거였다. 밖에 나가 식사하는 동안, 관광하는 동안 내내 말 한마디 안 하고 음식도 대충 먹는둥해서 결국 야밤에 수영장 물놀이를 하는 걸로 설득하여 삐침을 풀어주곤 했다.

20180803_203206.jpg 여행지 숙소 관리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야밤의 수영장 물속에 같이 들어가서야 딸아이 펴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딸아이는 무엇인가가 자기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유형무형의 것들이 자기를 여행일정의 우선순위에서 미뤄내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은 아닐까? 3남매 중 둘째의 위치에서 오는 자기 방어기제가 암암리에 여행 중 발현되었던 것은 아닐는지... 아빠가 무심해서 예민한 딸아이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돌아본다.


여행 시 찍은 사진을 찾아보면 둘째의 찡그리거나 무표정한 얼굴이 자주 눈에 띈다. 혼자 여행짐도 잘 꾸려 챙기고 자기 일은 알아서 잘하는 통에 여행 중 크게 신경 쓸 것이 없던 둘째 아이였는데, 그래서인지 여행지 곳곳에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투정 부리며 부모의 관심을 유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본 -IMG_4469.jpg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딸아이 삐침 추억사진. 필리핀 세부의 산페드로 요새인데 이유 모를 딸아이 삐침에 오빠와 동생이 같은 표정과 자세로 커버했다. 실제로 딸 빼고 다 기분최상


투정 부리고 삐치느라 멋진 구경거리도, 맛있는 음식도, 들뜬 여행기분도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딸아이 덕에 우리 가족은 재미난 사진과 추억거리를 얻었다. 사진을 보며 '여기가 그 유명한 관광포인트지' 라고 이해하는 것보다 딸아이의 무표정한 모습들을 통해 '여기서 우리 딸이 이러저러한 것 때문에 투정 부렸지'라며 그 장소를 파악한다. 그리고 그 장소와 그 시간대를 함께 이야기하며 추억소환에 재미있어 한다.


여행지에서의 삐침으로 자기의 원하는 바를 획득(?)해낸 딸아이 덕에 아빠는 딸아이와 야간수영도 즐기고 가족들과 함께 밤하늘의 많은 별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몸은 피곤하지만 여행뒤 일상으로 돌아와 같이 웃고 이야기할 추억을 얻은 것이다. 왜 그날 삐쳐있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못하는 딸아이와 함께 예전의 사진들을 보며 가족들이 함께 웃고 재미있어하니 그걸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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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 않은 미래에 딸아이는 혼자 혹은 누군가와 여행을 떠날 것이다. 어디론가 다니다 보면 아빠와 같이 여행 갔던 곳을 다시 찾아올 수도 있겠다. 그 자리에서 '그때 내가 왜 투정을 부렸지?'라고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나의 이 허전한 마음을 아빠 엄마가 헤아려줬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해주면 좋겠다. 아름다운 광경, 지역 맛집의 식사, 다양한 관광일정 속에서 여행기획자인 아빠는 여행을 즐김과 동시에 자녀들의 마음속을 여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미래에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하지는 않을 테다. 양육에 어설펐던 아빠지만 여행을 통해 3남매 중 둘째인 딸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그 순간만큼 행복했다고 추억하면 되니까.


조금 힘들면 어떤가? 여행을 통해서 아이들을 돌아보게 되는 것. 이게 가족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빨리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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