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손갤러리 14 SEPTEMBER - 19 NOVEMBER 2021
이배 (1956.10.25)
2018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기사장
2013 제4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2000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이배는 국내를 포함해 프랑스, 홍콩, 크로아티아, 미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전시를 진행해 왔다. 1982년 관훈갤러리를 시작으로 꾸준하게 전시를 개최했다. 홍익대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을 했으며 국내 포함 프랑스 파리에서 주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손갤러리 - 대구 중구 봉산문화길 72
인생의 3분의 1을 글로 채웠으니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글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글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이상하게 나는 내 글이 나를 설명하는 단서가 아닌 전시되는 마음 같이 느껴진다. 볼품없고 초라한, 대충 설명하기도 싫은 그런 거.
한씨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 독립서점에서 만난 책, 그곳에 적힌 나의 본명을 보고 연예인 이름이랑 같네? 하며 눈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아는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주변에 글을 쓰는 지인이 있고 그 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독립서점에서 본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 신기했다. 그 많고 많은 책 사이에 내 이름을 발견한 일부터 시작해서 나를 이토록 잦게 그리고 자부심을 담아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해 왔다는 사실이 말이다.
처음 셋이서 만난 날, 한씨는 끝없이 질문 공세를 펼쳤다. 인터뷰 자리 같기도 하고 질의응답 시간 같기도 해서 나는 성실히 묻는 말에 답하고 또 답했다. 소개 자리를 마련한 지인은 내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를 높였으면 했다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이토록 관심 있어하고 좋게 봐주는 사람이 많다고, 이를 증명하고 싶었다면서 환희 웃었다.
나는 이배와 같았다. 컨텍트와 같았다. 문학이 돌파구가 될 줄 알았건만 서로 간의 언어를 기어이 익히게 된 영화 컨텍트와는 달리, 나는 한 문장에도 얼어붙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단어 하나를 익히는데 십 년이 걸린 기분이다. 그렇지만 전에 만났던 사람이나 나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나 시가 쓰고 싶었다는 오랜 친구나 글을 쓰는 것이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해준 동생이나 다들 나를 존중해 주었다.
- 성공하실 거예요.
성공하고 나서 자신을 모른 척하면 안 된다는 말들까지 어떤 날은 이상하리만치 아팠다.
이배의 작품은 내가 본 작품 중에서 가장 특별했다. 먹으로 그린 듯 바닥에는 나무를 옮긴 자국으로 가득했다. 외계인의 발자국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나는 전시실 전체를 차지한 작품 앞에서 입을 벌렸다. 어찌나 큰지 천장에 닿을 기세였다.
죽은 나무가 아니라 환생한 나무 같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이런 거다. 앞에서 볼 때와 옆에서 볼 때가 다르고 처음 보았을 때와 다시 찾아가 보았을 때가 다른 작품. 한번 읽고 마는 글이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찾을 수 있는 글이 되고 싶었다. 별안간 다시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다짜고짜 틀어놓는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처럼.
글을 쓴다는 것.
발이 묶여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기분이 들지만, 오롯이 내가 될 수 있는 것.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 운이 좋으면 잠시 우주선을 타고 어디로든 날아가 심장을 주고 다리를 깎고 머리를 빗고 올 수 있는 것. 내가 하지 못한 사랑을 내 것처럼 경험할 수 있는 것.
우손갤러리에서
이배는 숯 하나하나를 자신이 직접 설치했다. 흰 상의를 입은 채 제 상의만 한 작품을 그대로 안아 들어 차곡차곡 쌓았다. 2주간 굽고 2주간 식히는 과정으로 만든 숯,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장인정신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모성애로 만든 작품 앞에서 잠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