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손갤러리 24 MARCH - 27 MAY 2022
최병소 (1943. 5. 30)
1999~2005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겸임교수
최병소는 대구 출생의 작가다. 그러므로 주요 작업지 역시 대구가 포함된다. 처음으로 우손갤러리에서 전시되는 것은 아니다. 2018년도와 2015년도에도 우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린 바 있다. 국내를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일본, 프랑스,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에서 그룹전으로 참여했다. 중앙대 예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대학원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우손갤러리 대구 중구 봉산문화길 72
나를 자극시키는 것들 중에 단연 '사람'이 있다.
올해부터 보기 시작한 명문대생, 취준생, 의대생 등의 브이로그 중에서 <구튜브>라는 유튜버를 새로이 알게 됐다.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다니는 대학생인데, 교생실습 준비부터 새롭게 시작한 자취 라이프와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 공부, 이십세 촬영 준비 등 자신의 치열한 일상을 2~30분가량 브이로그로 담았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다가 4주간의 실습을 마치고 난 다음,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소감문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이러한 말이 나온다.
혹자는 강사에게 전공 공부와 학점은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하겠지만
단순히 문제만 잘 풀어본 사람과 영어 교육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폭넓은 고민을 해본 사람이 줄 수 있는 교육의 질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4주간의 교생 실습은 이러한 제 믿음에 확신을 가져다주었어요.
믿음.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믿음이 있는 이를 보면, 나는 이로 말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느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발견해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그와 또래라면 또래인 나와 내 동생은 아직까지도 갈 길이 멀다. 둘 중 아무도 면허가 없고 독립도 하지 못했고 간간이 용돈을 받는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이 당연하면서도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두어 살 어린 그에게서 열등감보다는 자극을 얻어가려고 노력 중에 있다. 나도 내가 하는 일에 믿음을 당당히 기워넣고 싶다.
우손갤러리에서 처음 만난 최병소 작가는 수십 년 간 한결같은 작업 방식을 고집한다. 이건 그의 아이덴티티이자 오랜 세월과 신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의 아내는 밤마다 들려오는 서각대는 소리를 소음이 아닌 그의 숨소리로 기억한다. 들리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한 풍경이 된 것이다.
우손갤러리에서 그를 처음 본 뒤,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iDaf22 전시에서 다시 한번 그를 만났다. 그 뒤로 지난 7월, 대구미술관 정보센터에서도 그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를 ‘지움과 동시에 그리다’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는 그의 작업방식을 완벽하게 표현한 문장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는 자신이 20세기의 사람이고, 20세기의 불온과 가난, 억압에서 비롯된 시작을 지우지 않고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시대를 잊지 않고 보존하며 또한 오늘날의 그를 새로 덧칠하고 입히고 있다.
그 많고 많은 재료 중에서 ‘신문지’를 선택한 것이 의외였는데 당시에는 재료가 귀하고 비쌌을뿐더러 검열 역시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신문이었다. 신문 위로 인쇄된 역사와 정치, 새 소식이 목덜미 위치만큼 빼꼼히 내보이고 있는 것 역시 최병소다웠다.
최병소도 마찬가지고 구튜브도 마찬가지고 그들은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이 길을 왜 걷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결코 잊지 않는다.
최병소는 말했다.
사람들이 작가의 작업에 감동하는 이유는 진정성과 순수성 때문이라고. 진정한 작가적 자세와 순수한 작가적 정신이 바로 그것이라고.
어느 카페든 커피가 맛있어야 하고 어느 교사든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하고 어느 화가든 자신만의 세계를 표할 줄 아는 능력과 힘이 있어야 한다. 부모와 시대를 잘 만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믿음과 확신으로 덧발린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그들을 보며 나 역시 헛되이 살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덧칠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꽤 나태하였다. 그래서 더 배부름과 푹신함에 몹시 창피하였다.
최병소 : 나는 20세기에 태어났고 20세기를 살아왔다
20세기 전반까지 미술의 흐름은 -ism이었다
후반기가 되면서 -ism은 -art로 바뀐다
Earth art, Light art 등이 미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
구태여 말하자면 나도 -art쪽이다
어떤 –art이냐?
Poor art. 언제나 담뱃값 정도의 비용으로 만들어지는 간편한 예술,
가난한 예술, 빈약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