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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Jun 27. 2022

그 아이를 용서하지 않는다

중학생 때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일진, 왕따 등으로 표현되는 학교 폭력이 있었다. 나는 맞는 쪽이었다. 심하게 맞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고등학교에서는 다행히 학교 폭력이 없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나이 아이에게 이유도 없이 맞는 일은 없었다.


그것 만으로도 중학교 때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어느 날 집에 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낯익은 애가 와서 내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했다. 잊을 수 없었다. 중학생 때 나를 자주 때렸던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나를 반겼다. 친한 친구들이 대학에 다 떨어지는 바람에 자기 혼자 다니게 생겼는데 아는 얼굴을 봐서 너무 좋다고 했다. 나를 마주칠 때마다 먹을 걸 사주고, 게임도 빌려주고, 음악CD도 빌려주고, 교양수업 같이 듣자 하고, 쉽게 말하기 힘든 고민도 털어 놓았다.


일단 폭력이나 가스 라이팅으로 자신의 하수인을 만들려는 의도가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갑자기 나를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내 뺨을 후려치고 당황하는 내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던 기억이 없나?


혹시 잊어버린 건가? 고작 3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 그걸 잊어버릴 수가 있는 건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보여주는 호의는 너무도 진솔하고 진정성이 있었기에 관계를 바로 잘라 내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그 아이의 일방적인 호의를 받으며 어색하게 한 학기를 지났다. 만나면 인사도 하고, 버스도 같이 타고, 밥도 같이 먹고 했지만 딱히 그 애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내가 휴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휴학 중에도 여러 번 문자가 왔지만 회신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상처받은 기색을 내보이자 뭔가 내가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철 모르던 중학생 때 저질렀던 일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나. 지금은 이렇게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해서 그 일을 없었던 셈 쳐야 하나.


그 일을 용서하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인가. 용서하지 못하면 잊어 버리기라도 해야 어른스러운 것인가. 그 후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도 종종 그 때의 일이 생각났다. 그 아이를 용서 했어야 되는 건가 하는 의문에 항상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문득 오래간만에 그 일이 떠올랐다. 그 동안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내가 이 문제를 왜 이렇게나 고민했던 거지? 싶을 정도로 간단하게 답을 냈다. 그 아이를 용서하지 않는 게 옳다고.


용서하지 않는 건 그 아이의 죄를 끝까지 물어야 한다 거나. 용서하기에는 저지른 행동이 너무 심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딱히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도 없다. 단지 이 일을 용서해버리면 중학생 무렵의 내가 너무 가여워지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그 일을 기억하건 말건. 잘못을 뉘우치건 말건.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이제는 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해도 상관없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그 아이를 용서하지 않는 것 뿐이다.


이미 25년도 훌쩍 넘은 그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지구상에서 오직 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내가 세월이 많이 지났다는 이유로 그 아이를 용서해주거나 그 일을 잊어버린다면 중학생 시절의 나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는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이것이 중학생 시절의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꼭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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