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이 지나 지금은 잊힌 인기 가수들을 다시 불러 모아 그때 그 시절의 노래를 한 번 더 부르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유행가에는 그 당시 향유했던 개인의 정서가 기록되는 특성이 있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추억을 떠올리며 좋아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가수지만 내가 듣던 시절에는 정말 굉장했다면서 그 가수의 전성기 무용담을 읊으며 기뻐했었다.
나도 물론 그 시절 그 가수의 기억이 떠올라 반가웠다. 둔감해진 감수성을 진동시키는 묵직한 감동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내 마음 한켠이 헛헛하고 쓸쓸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기가 없었던 가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방송에 나온 가수들은 한 시대를 풍미할 정도로 뛰어나고 인기 있었던 분들이기에 지금에 와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반가워한다. 하지만 인기 없었던 가수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그 기억되지 않는 가수들에게도 이 방송은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 뒤끝이 조금 씁쓸한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굳이 가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설, 영화, 만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는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분야에서는 나 역시도 분명하게 잊힌 존재이다.
그렇게 기억되지 못 한 사람들의 시간은 의미가 없는 걸까. 그냥 헛된 시간을 낭비했을 뿐인가. 나 역시도 그렇게 시간을 낭비한 무의미한 존재로 남아버린 건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봐도 그 시간이 무의미했다는 결론에 도달하진 않았다.
잊혔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에 인기 있었던 분들과 분명하게 같은 분야의 같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그 옆에서 분명히 같이 빛나고 있었다. 너무 희미하게 빛나서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빛났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찬란하게 빛나는 분들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날 순 없다. 그렇기에 누구나 다 일류가 될 수 없다. 찬란하게 빛나기를 소망했지만 희미하게 빛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 희미하게 빛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실패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의미했던 노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상관없이 빛났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항상 찬란하게 빛나는 큰 별들만이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어떤 분야의 어떤 순간에서도 그 빛나는 큰 별들 사이를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별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별들이 빛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나 역시도 희미한 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그 별들이 분명하게 빛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