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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Jul 17. 2022

어른을 울린 날

나는 상대방의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포옹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상호 호감과 신뢰가 충분히 쌓인 사람 한정) 사람을 껴안으면 격한 감정이 가라앉으며 마음이 차분해진다. 특히 불안할 때 껴안으면 심장 언저리에서 분말형 진통제가 피를 타고 퍼져나가는 것처럼 불안이 가시면서 편안해진다. 그래서 장소를 불문하고 포옹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잡혔다 싶으면 일단 껴안고 본다.


얼마 전 4년 반을 함께 근무했던 절친한 동료가 퇴사 인사를 하러 왔다. 서글서글한 성격과 섬세한 배려심이 돋보이는 아주 좋아하는 분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다가 이렇게 헤어지는 게 슬프고 섭섭해서 포옹을 했다. 껴안은 채 등을 토닥이며 수고하셨다고 말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갑자기 동료분이 말이 없어진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서 떨어졌더니 눈물을 떨구고 계셨다. 조금 전까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 계시던 분이 울고 있었다. 너무 당혹스러워 어... 어... 하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동료분은 눈물을 훔치며 화장실로 가셨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지켜보던 다른 동료분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홍환씨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추궁했다. 나는 얼빠진 표정으로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사람을 울려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5-6년을 거슬러 올라가 봐도 기억에 없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을 울려버린 것이 너무 충격적이라 몹시 당혹스러웠다. 뭔가 엄청난 무례를 저지른 거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포옹이 무례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동료분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말끔해진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셨다. 아까 왜 우신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걸 물어볼 상황이 아니라 묻지 않았다. 그렇게 그 동료분은 회사를 떠났고 나는 매일 보던 반가운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얼마 후 지인을 통해 그때 왜 우셨던 건지 대답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다행이 포옹이 생물학적 혐오감을 불러 일으켜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껴안는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그랬던 거라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미안함, 고마움, 쓸쓸함 그리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미안함에는 그동안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아쉬움이. 고마움에는 눈물을 흘릴 만큼 이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준 것에 대한 감격이. 쓸쓸함에는 이제 또 언제 같은 회사에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을 할 수 없다는 슬픔이. 그리고 양심의 가책에는 ‘어... 나는 안 울었는데...’의 머쓱함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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