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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Jul 25. 2022

직장인의 영혼

회사를 다니는 것은 힘든 일이다.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협업에는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인간관계의 폭풍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금방 녹초가 된다. 의도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어느새 원하지 않는 방향의 업무를 통과시키는 것이 내 일이 되어있다. 그것도 반발하는 동료들과의 감정 줄다리기를 감수해야만 겨우겨우 가능하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이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졌던 포부 같은 것은 금방 사라진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문명의 발전이 어째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여 정해진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은 몹시 힘든 행위가 되어버렸다. 그런 직장생활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글은 어떤 커뮤니티나 SNS에 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직장인들에게 해주는 조언들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그냥 그 사실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다. 그냥 이건 원래 괴로운 것이고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기대를 없애면 차라리 버티기 쉬워진다는 의미였다. 상당히 그럴듯한 깨달음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나도 저런 자세를 가져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는 것을 내가 원하지 않았다. 아니 견디지 못했다고 얘기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현대인에게 직장이란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지내는 공간이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인생의 절반을 회사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인생의 절반이 영원히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는 미래 확정적 사고는 너무나 절망적이다.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해서 그 가능성마저 미리 포기해버리는 일은 스스로 희망의 숨통을 끊는 일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없이 어떤 행위를 지속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마음을 죽일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헛되다고 해도 희망을 놓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쉬울 것 같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잘게 쪼개보면 항상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은 아니다. 원하지 않는 오더를 받아 업무를 진행 시킬 때도 그 제한된 영역 안에서 내 의도를 살린 뭔가를 완성해 낼 수 있다. 내가 완성 시킨 결과물이 사용자들에게 호평을 받으면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 사사건건 어깃장만 놓는 동료라도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함께 가다 보면 서로를 깊이 인정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운 좋게 나를 고평가 해주는 상사를 만나면 더 많은 권한을 얻어 내가 의도하는 바를 더 많이 담아내는 업무를 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나도 매일 매일 주말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회사 가기 싫은 회사원 중 하나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장은 원래 괴로운 것이니 그냥 돈만 벌기 위해 영혼 없이 다닐 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자아를 조금이라도 더 풍족하게 만들 수 있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항상 가지고 있다. 내 삶의 절반이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미래 확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인생을 더 의미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훨씬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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