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억은 담배 연기 자욱한 어두운 지하 오락실이다. 7살 무렵 나는 그곳에서 처음 게임을 만났다. 온몸의 감각을 순식간에 각성시키는 그 찬란한 세계를 만난 순간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정신세계의 중심에는 항상 게임이 있었다. 지금도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1990~2000년대에는 훨씬 더 심했다. 오락실은 불량 학생들의 집합소였고 게임에 빠지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한심한 취급을 받았다.
학교에서도 게임 잡지나 공략집 같은 것들을 끼도 살았던 나는 당연하게도 한심한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은 혀를 차며 ‘커서 뭐가 되려고’하는 시선을 보냈고, 반에서도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이 딱히 분하거나 억울하지는 않았다. 나 스스로도 게임에 빠진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가지거나, 장래에 대한 진취적인 비전을 가지고 게임에 빠졌던 게 결코 아니었다. 이것이 건전하지 않은 활동임을 자각하면서도 단지 멈출 수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흘러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마침 그 시기에 MMORPG의 흥행을 계기로 한국 게임 시장이 커지기 시작해서 나는 운 좋게도 게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게임 회사에 들어와 보니 그동안 한심한 취급을 받아왔던 내 게임 활동 경험에 대한 인식이 정반대였다. 밤을 새워 가며 이 게임 저 게임을 플레이 해 본 경험이 수준 높은 교양 지식 취급을 받았다. 그동안 손가락질당하며 쌓아왔던 게임 경험들이 온전하게 생산적인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똑같은 경험에 대한 인식의 온도 차가 인지부조화가 올 정도로 컸다. 비난을 감수하며 방탕하게 정신적 쾌락을 추구했던 시간들을 능력으로 인정받고 그 덕분에 먹고 살 수도 있게 되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행운에 대해서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출퇴근은 여전히 피곤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내 직업에 대해 만족한다. 직업 활동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공헌을 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도 가지고 있다. 억지로 노력해서 의식적으로 소명 의식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직업이 아니었더라면 밥 벌이도 못 하고 게임 폐인 취급을 당했을 거라는 차가운 진실을 직시하면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충만해져서 소명 의식을 도저히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