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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Aug 13. 2023

그날의 빵집

그날은 몹시도 괴로운 일이 있었던 날이었다. 근심 걱정에 마음이 짓눌려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날이 밝아올 때 쯤 이 상태로는 일을 못 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연차를 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잠이 오질 않아서 새벽 6:30쯤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마음도 좀 차분해지고 몸도 지쳐서 잠이 잘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긴장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 누적된 피로로 몽롱하지만 온몸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져서 마치 누군가가 조종하는 마리오네트가 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휘적휘적 발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현실에서 유리되어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듯한 감각이 가시질 않았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현실 자각이 돌아오질 않았다. 


그때 갑자기 빵 냄새가 났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빵을 굽고 있는 냄새였다. 이사 온 지 5년이 넘었지만 내 기억에는 이 근처에 빵집이 없었다. 하지만 빵 냄새는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현실감을 가지고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빵 냄새를 쫓아간 끝에 평소에 다니던 길보다 좀 더 외지고 깊숙한 곳에서 작은 빵집을 발견했다. 간판의 노후한 상태를 봤을 때 새로 생긴 가게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전에 이 동네에 자리 잡았던 가게 같기도 했다. 아무튼 원래 거기 있었는데 단지 내가 몰랐던 가게인 것은 틀림 없었다. 


냄새가 너무 좋아서 그대로 들어가 간판 메뉴인 갓 구워낸 치아바타 하나를 샀다. 참지 못하고 바로 베어 물자마자 헉 소리가 나왔다. 엄청나게 맛있었다. 고소한 냄새와 보드라운 식감이 팽팽해진 신경을 마사지하듯 주물러 주었다. 그 순간 문득 허기가 느껴지며 내가 지금 배가 고픈 상태였다는 걸 깨달았다. 빵을 베어 먹을수록 현실 감각이 돌아와서 다 먹었을 때쯤에는 다시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었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쉽게 잠들었고 오후에 깨자마자 다시 들러서 또 빵을 샀다. 


그날 이후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당시의 괴로웠던 일은 대부분 해결되었다. 그리고 그 빵집은 요즘도 주 1회 이상 꼭 들리는 단골 빵집이 되었다. 재료도 너무 좋고 맛도 너무 좋아서 입에 넣는 순간 스트레스도 함께 녹아내려 버리는 여전히 훌륭한 빵을 구워 판다. 


그 당시에 그런 일이 생겨서 그 시간대에 집 밖을 배회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그 빵집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괴로운 일이 생기면 그 빵집을 떠올리며 읊조린다. 이 끔찍한 사건이 나를 세상 어디와 연결시켜 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사람 일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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