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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Nov 28. 2020

스키야키의 매력

온기를 나누어 먹는 요리

직장인 2~3년 차 무렵에는 경험도 전문성도 부족하여 거의 매일 상사에게 질책을 받았다. 야근도 열심 히 하고 휴일에 공부도 열심히 하며 애썼지만, 단기 간에 그 질책의 나선을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그 혹독한 시절을 지나던 무렵, 내 옆에는 마찬 가지로 항상 상사에게 같이 질책을 받던 비슷한 연차의 동료 몇 분이 있었다. 그분들은 점심 식사를 매일 같이하던 동료들이기도 했다. 


질책의 강도가 높아져서 다 같이 힘들어하던 12월의 어느 날, 한 동료분의 제안으로 점심때 스키야키를 먹으러 갔다. 그 당시의 나는 스키야키를 먹어본 적도 없었고, 스키야키가 어떤 요리인지조차 몰랐었지만 사무실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먹는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아’ 하는 심정으로 그냥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을 때 조금 놀랐다. 스키야키는 익지 않은 재료를 식탁 위에 두고 천천히 익히면서 먹는 전골 요리였던 것이다. 채소가 시퍼런데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익혀 먹나 하고 조금 걱정이 됐지만 그런 불안한 마음은 천천히 사라져갔다. 익는 걸 기다리는 시간이 의외로 즐거웠기 때문이다. 


보글보글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 너머로 마주한 동료의 얼굴은 사무실에서 볼 때보다 한결 더 푸근해 보였다. 푸짐한 재료가 끓고 있는 냄비가 조성하는 아늑한 분위기 덕에 평소보다 훨씬 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술도 감정의 벽을 허물어서 대화를 매끄럽게 해주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다. 술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은근하고 부드러운, 정서를 매만지는 윤활제 같은 느낌이었다. 


재료가 다 익자 서로 돌아가며 한 그릇씩 먹고 더 떠 주었다. 냄비 하나에 들어 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가 마치 온기를 나누어 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욱 아늑하고 누그러진 기분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난주에 눈을 봤을 때는 추위와 출근길 차 막힘만 떠올라 몹시 기분이 질척거렸는데, 스키야키를 앞에 두고 보는 눈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그날은 점심시간이 거의 아슬아슬하게 끝날 때까지 한참 동안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날 처음으로 익지 않은 재료를 여럿이서 익혀 먹는 전골 요리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겨울이 되면 항상 스키야키 생각이 난다. 그리고 매년 겨울이 올 때마다 잊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스키야키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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