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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Nov 24. 2020

연말연시의 악마

연말연시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

연말연시가 될 때마다 길었던 1년이 마침내 끝난다는 안도감과 아무도 손대지 않은 깨끗한 새 1년이 다가온다는 설렘이 평소보다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명랑한 캐럴도, 매장마다 전시된 크리스마스 상품들도, 연중 가장 비싸고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는 회식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지인들과의 모임도, 사회의 밝고 행복한 에너지의 평균값을 한도까지 높인다. 


하지만 나는 연말연시가 될 때마다 급격히 들뜨는 이 분위기를 의식적으로 경계하는 편이다. 이 시기에 마음을 다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 활동을 하지 않던 외톨이 시절에는 오색찬란한 트리 아래에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홀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고립감과 외로움 때문에 힘들었고, 사회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오래간만에 즐거운 모임을 가지고 흥겹게 집으로 돌아와 칠흑 같은 현관문 안으로 발을 내디딜 때 느껴지는 고독함의 낙차를 견디기 힘들었다.


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적 밝음이, 갑작스럽게 증가한 사회적 밝음의 수준을 따라갈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애를 써봐도 항상 마음을 다치고 말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연말연시가 되어 마음이 들뜰 때마다 과거의 상처들을 의식적으로 복기하며 올해는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연말연시에는 악마가 숨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항상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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