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하얀 캔버스를 고르는 것.
설레는 마음으로 내가 담아낼 수 있는 세상을 채워나가겠노라 원대히 꿈꿨다.
드넓은 캔버스엔 원한다면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을 터였다.
캔버스를 채워가는 시간보다 수만 가지 색 앞에서 나만의 색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고심 끝에 고른 색이 담긴 팔레트를 들고 칠해가는 캔버스는 시간이 갈수록 여러 가지 색을 너무 덧칠한 탓인지 무채색이 되어갔다.
이제는 제아무리 화려한 색을 덧대도 소용없었다.
그래, 이게 내 색인 가보다.
남들의 캔버스에 눈길이 갔다.
저마다의 색으로 유려한 자태를 뽐냈다.
그에 비하면 내 세상은 어둡고 적막했다.
소란한 세상을 지나, 내가 그려가는 세상에만 집중하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그리 밝지 않아도 좋다.
담담해서 좋다.
덧대어진 다른 이의 붓질에도 변하지 않는 내 세상이 좋다.
그래, 이게 내 색인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