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끌린 드라마였다. ‘찌질의 역사’, 무언가 강렬하다.
웹툰 원작인 이 작품은 주연 배우 이슈로 이제야 공개됐다.
주연 배우 이슈는 각설하고, 작품에 대해 느낀 점만 적어보고자 한다.
‘찌질’이라는 단어와 어울리게 미성숙하고 어딘가 불완전한, 이제 막 어른이 된 4명의 스무 살 소년의 각기 다른 연애 스토리를 담아내었다.
드라마의 제목과 걸맞은 작품 속 상황과 설정의 디테일이 무척 현실적이었다.
오그라드는 장면에 주먹 쥐며, 때로는 내가 그 경험이라도 한 듯 이불킥을 하고 싶고,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보기도 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남자들을 이렇게 잘 담아낼 수 있구나.’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며,
무모할 만큼 용감하기도 하며,
숲을 보기보단 나무를 보기에 순간의 판단이 앞서는,
그런 존재들.
어렴풋이 나의 스무 살은 어땠나 생각해 본다.
사람은 자신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서 성장한다.
여러 사람들을 마주하며 사랑과 이별을, 우정을, 신뢰와 배신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다양한 감정을 배운다.
그간 나와 마주했던 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나는 아직도 어엿한 어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어른이라고 불릴만한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만나고 있다.
그들은 말로, 행동으로, 진중한 생각들로 미성숙한 나에게 많은 영감과 교훈을 주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뒤돌아서 곱씹은 뒤에야 느끼게 된달까.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아쉬움, 후회라는 감정들이 쌓인다고 말하는 걸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지나간 젊은 날의 추억을 같이 곱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내 곁에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찌질했던 역사의 산증인들이니까.
어딘가 멋져 보이지 않아도, 때로는 속된 말로 구려 보여도,
서로 그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해 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내가 찌질하지 않은가? 이제는 성숙해졌나?’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스무 살처럼 철들지 않았다는 핑계도 댈 수 없는 서른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다만 달라진 것은, 찌질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 한 시기를 지나 ‘이게 결국 나인가?’ 하며 어느샌가 받아들이는 나를 종종 마주한다는 것이다.
뭐 어쩌겠나. 사람이 쉽게 바뀌지도 않는데. 매번 멋있고 어른스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쉽사리 답이 내려지지도 않는다.
이 작품의 원작인 웹툰에서는
“자신이 한 선택에 따라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결과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저 누군가가 바라볼 때 내게서 배울 점이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고 싶다.
여전히 내가 기록해 나갈 찌질의 역사에는 어떤 사람들이 함께할지 궁금하다.
이제는 멀어진 이들에게는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할 이들에게는 “감사합니다.”
새롭게 함께할 이들에게는 “잘 부탁드립니다.”
추신
OST 전곡을 장범준 님이 불렀는데 정말 좋다. 특히 ”항준 선배와 술 마시면서 한 이야기“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