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

by 김영빈

고요한 방, 1분 단위로 알람이 울린다.


퇴근이 늦을 것 같은 날은 출근 전 운동을 하러 간다. 오늘이 마침 그날이다.


며칠 전 종종 새벽 운동을 가는 나에게 직장 동료들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힘들어도 그냥 가는 거지 뭐”라며 별거 아닌 척했다.



사실은 내면의 또 다른 나와 끊임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10분만 더 자고 가자.’


‘퇴근하고 가자’


‘운동 시간을 좀 줄이면 더 잘 수 있어’


그래 다 맞는 말이다. 처맞는 말.


합리화를 관두고 벌떡 일어난다.



새벽 운동 전에는 공복에 유산균을 먹고, 물 한 잔 그리고 과일즙이나 바나나 한 개를 먹는다. 전날 충분히 먹었다면 물 한 잔만 마신다. 그리고 양치를 한 뒤 집을 나선다.


고요한 공기만큼이나 도로도 고요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두컴컴했는데 지금은 꽤 밝은 걸 보니 다시 봄이 오나 보다.


헬스장에 도착해 화상 카메라로 출석 체크를 한다. 카메라에 비친 초췌한 몰골이 적응 안 되는 것은 여전하다. 그래도 씩 미소를 지어본다.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 존에 간다. 준비 운동을 길게 하지 않는 편이지만 새벽 운동에는 잠들어 있는 몸을 깨우기 위해 스트레칭은 필수로 해준다.


매일 같이 새벽 운동을 하시는 예수님 머리스타일을 한 몸 좋은 형님과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사실 나이를 모른다. 형님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나보다 몸이 좋으면 형님이다.



저녁의 헬스장이 북적이고 활기찬 느낌이라면, 새벽의 헬스장은 고요하고 정돈된 느낌이랄까.


다들 운동도 조용히 하는 편이고 매너도 좋은 편이다. 정숙한 분위기에 어울리게 서정적인 노래들도 종종 흘러나온다.


오늘의 노래는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오픈 담당 트레이너분의 취향이 썩 마음에 든다.



저녁에도 지금처럼 텅 비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을 하며 운동을 시작한다.


이른 시간 공복으로 운동할 땐 자기 합리화와 항상 싸워야 한다. 몸이 덜 풀려서, 공복이라서와 같은 이유로 쉽사리 포기하기 쉽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새벽 운동을 할 때 잠을 쫓기 위해 부스터를 마시지만, 카페인을 잘 먹지 않는 나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수면의 질이 떨어져서 카페인을 점차 멀리했다. 처음엔 운동하는 것도 힘든 수준이었는데 제법 적응이 됐다.


저녁 운동과 다를 거 없이 이전보다 강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열심히 밀고 당긴다.



공복 운동의 장점은 운동을 마칠 때 몸의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그냥 빨리 밥이나 먹으라는 신호인가 싶다.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운동을 마치고 샤워실로 향한다. 무슨 일인지 탈의실에 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인포에 문의해 보니 차단기 문제가 있어 빠르게 수리 예정이라고 한다. 이른 시간이라 조치가 불가능하단다.



더 놀라운 건 아무렇지 않게 씻고,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리는 사람들이다. 빛이 아예 없으니, 저마다의 핸드폰으로 플래시를 켜놓았다.


‘아,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인데.’


탈의실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시류에 편승하여 나도 자그마한 빛을 보탠다. 더듬거리다 실수라도 할까 더 조심스럽다.


선조들은 깜깜한 밤에 촛불 하나에 의지해 글을 읽었다고 하는데, 실로 대단하다.



어찌어찌 샤워를 마치고 스킨케어를 하고 헬스장을 나온다. 이번 지하철을 놓치면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한데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지 속절없이 발그레해져 있는 신호등이 야속하기만 하다.


여름이면 감히 뛸 생각도 못 하니, 선선한 날을 이유 삼아 걸음 속도를 높여보기로 한다.


주머니를 뒤적여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고, 최근 빠져 있는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무대를 재생해 출근길에 웅장함을 더한다. 왜 웅장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느슨한 것보단 낫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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