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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Apr 06. 2021

지방직 공무원, 어디서 하든 똑같다면.

신중한 결정이 필요해


춘천에서의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이사 후 집 정리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아이들과 아내는 각자의 생활에 잘 적응했다. 나의 하루는 대략 아침 일곱 시 오십 분에서 여덟 시 사이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곱 시 정각에 알람을 맞춰두고 일찍 씻고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매일 하지만 정작 현실은 알람을 듣고는 50분 정도의 타이머를 설정해놓은 뒤 다시 눕고 만다. 여덟 시가 다 되어 겨우 일어나서 아직 단잠을 자고 있는 두 아이를 깨우고 부랴부랴 씻기고 입히고 먹인다. 그리고 온 가족을 한차에 태우고 큰아이 초등학교, 아내 회사, 둘째 아이 유치원 순으로 내려준다. 서울에 살 때보다 훨씬 여유 있는 출근길이다. 둘째 유치원까지 내려주는 데에 이십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여덟 시에 일어나서도 모든 가족의 출근, 등교, 등원이 아홉 시 전에 이루어지니 돌아오는 길은 좀 복잡하긴 하지만 나도 여기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에 그대로 있었다면 한 시간이 넘는 나의 출근길, 두 시간은 걸리는 아내의 출근길에 사람을 쓰지 않고는 아이들을 케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여기서 일할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언제 올지 모르니 가능성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춘천시청 인사팀을 찾아갔다.


저는 서울시 공무원인데요, 여기로 교류를 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코로나 등으로 전국 모든 지자체에 휴직자가 넘쳐나 인력부족 현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따라서 티오는 충분하고 오겠다는 인력은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춘천으로 전입을 하게 되면 1계급 강임에 1년간 승진이 제한된다고 한다. 또 5년간은 다른 곳으로 전출이 불가능하다는 조건이 있었다. 강임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전출제한은 원하는 시기에 다시 돌아갈 수 없고 평생을 이곳에 살아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애초에 우리는 최대 4년을 춘천에서 살 계획이었다. 아내의 직장이 춘천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이 직장을 다닐지는 모를 일이다. 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즈음에는 서울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요즘은 춘천에 평생 산다는 전제로 직장을 옮기는 것까지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공무원끼리의 인사교류는 쉬운 게 아니다. 타이밍이 맞고 의지가 강해야 겨우겨우 이루어진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몸소 체험했다. 딱 맞는 교류 상대자를 구하기부터가 쉽지 않다.


지방직 공무원은 어디서 하든지 똑같다고 한다. 정해진 봉급과 수당은 제도적으로 동일하지만 그래도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들이 있기는 하다. 푼돈이나마 서울에 있는 것이 금전적으로는 유리하기는 하다. 하지만 업무강도에 있어서는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도 힘들기로 유명한 내가 속한 자치구보다는 춘천이 나을 것 같다. 그래도 막상 적을 옮긴다는 생각을 하니 지방 특유의 텃세 같은 것이 있을까 봐 또 걱정되기도 한다.


결국 결정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인데 쉽지가 않다. 아내는 춘천에서 계속 사는 것도 싫지는 않은 눈치다. 사실 우리가 서울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대치동이나 목동에서 살 것도 아닌데 자녀들의 교육환경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긴 하다. 오히려 여기 전원주택에 살며 농어촌 특례를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 역시 어려운 결정이다. 이제 겨우 한 달 산 걸로는 춘천에서의 삶을 판단하기에 너무 부족한 기간이다. 점점 하루하루가 풍성해지긴 하겠지만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무료할 때도 있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자격지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다.


아내의 직장은 춘천시청 바로 앞이라 여전히 한차로 모두가 출근이 가능하고 오후 세시에 마치는 첫째 아이는 학원을 두어 군데 보내면 시간은 맞출 수 있긴 하다. 그러나 매일 가장 늦게 하원할 둘째아이와 어쩔 수 없이 학원을 전전해야 할 첫째 아이가 안쓰럽다. 이런 생각 자체가 그동안 육아휴직의 목적에 맞게 충실히 아이를 돌보지 못한 건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도 만든다.


쉽게 내릴 결정은 아니다. 내가 결정한다고 쉽게 교류가 이루어지지도 않을 수 있다. 일단 당분간은 충실하게 내 시간을 보내봐야겠다. 춘천도 사계절을 한 번씩은 겪어 봐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일정한 주기로 전국을 떠돌아야 하는 국가직 공무원과 다른 지방직 공무원의 최고의 장점은 거주 안정성이다. 한 곳에 뿌리내려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그곳을 이곳, 춘천으로 삼을 수 있을지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고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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