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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Apr 18. 2021

휴직 중,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면


돌아가서 고생은 꽤 하겠지만 어쨌든 돌아갈 데는 있다. 말 그대로 직장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잠시 쉬는 것이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논리를 거부하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생의 시기에 따라 우리의 삶은 몇 가지 공식이 있다.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 우수한 성적을 받아야 하고 사회로 나와서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가계경제의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보다 큰 권력을 가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재산 증식을 목표로 노력하는 중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최대 난제 중의 하나 육아를 위해 경쟁과 경제활동의 무대에서 잠시 이탈했다. 세 번째 육아휴직으로 1년씩 했던 지난 휴직들보다는 기간을 좀 더 길게 잡고 있다. 다행히 육아휴직은 공무원 조직에서 휴직 사유의 끝판왕이다. 육아를 목적으로 한 휴직 신청이 거부당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춘천의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후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요일별로 다양한 스케줄과 함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매일 새로운 콘텐츠로 다채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이 시간을 만끽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가있는 동안 나에겐 4~5시간의 여유가 있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 잠시만 한숨을 돌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 빨래 더미들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건조기에 빳빳하게 건조된 옷들을 꺼내어 차곡차곡 갠 다음 각자의 서랍에 집어넣는다. 어제 미리 안 해 놓은 걸 매번 후회하며 설거지를 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살짝씩 원망하며 머리카락이며 과자 부스러기 등을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먹다 남았거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냉장고의 음식들 위주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고 인스턴트 아메리카노를 한잔 하면서 생각한다. 휴직만 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왜 하루 종일 집안일만 하고 있지? 휴직을 결심한 때부터 생각해 오던 것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자격증 취득


휴직기간 동안 어떤 형태로든 가시적인 결과물을 하나 만들고 싶었다. 자격증 취득 분야로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게 공인중개사였다. 적성에도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꽤 많이 들어가는 공부라서 육아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대형면허를 취득하여 운전직 공무원으로 다시 시험을 보는 것도 고려해 보았으나 마음의 결정을 확실히 내리지 못해 구상단계에만 머물고 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펫시터 자격증은 조만간 취득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도그 워커가 고소득 전문직이라는데 우리나라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정리하는 것


완전한 사십 대가 되었으니 지난날의 기억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하드 깊숙이 저장되어 있는 오래된 사진들을 하나하나 꺼내보듯이 가장 최초의 기억부터 즐거웠던, 슬펐던, 설렜던, 뿌듯했던 모든 인상적인 기억들을 글로 남겨두려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하게 되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 나를 보여준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인생의 반환점에서 전반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이렇게 살아온 사람이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려줄 수단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행히 이 작업은 브런치를 통해 천천히 느리게 진행을 하고 있다.


3. 악기 배우기


인생의 질을 판단하는 척도 중의 하나로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지를 꼽는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하던 고민 중의 하나였는데 피아노와 기타를 배우려 시도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배워서 얼마나 실력이 붙겠나 하다가도 쉽게 놓아버릴 수는 없는 목표이다. 지금은 딸아이가 유치원 때 쓰던 하모니카와 최근 딸아이 방과 후 특성화 수업을 위해 구매한 플루트를 딸아이와 공유하며 배워보려 하고 있다.


4. 요리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으니 어차피 요리는 생활에 필수이지만 그 이상의 경지에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십수 년간 잠자고 있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식재료를 다양하게 냉장고에 구비해두고 라면 하나 끓일 때도 이 재료 저 재료를 섞어가며 요리 연구를 해 나가는 중이다. 아직은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 파스타, 김치전, 황태해장국 등 기초적인 단계에 있지만 조만간 닭볶음탕이나 갈비찜, 팬케이크  같은 난도 있는 요리도 가능해질 것 같다.


5. 골프


휴직 중에도 알게 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골프연습장을 등록했다. 때때로 아주 잘 맞아 날아가는 골프공을 바라보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몇 개월 씩  띄엄띄엄 연습한 게 전부인지라 아직 걸음마 수준도 안되지만 그래도 골프를 칠 줄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체질에 맞지 않는 레슨 없이도 원하는 곳 근처에 공을 보낼 수 있으려면 얼마의 세월이 더 필요할까.


6. 독서


집에는 책이 많다. 95% 이상이 글로 먹고살던 아내의 책이지만 가장 넓은 방을 안방 대신 서재로 꾸몄고 웬만한 집보다는 작은 책방이라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진열해 두었다. 전시용으로만 지금껏 사용되었기에 읽지 않은 80%의 책들을 시간 날 때마다 섭렵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나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7. 웨이트 트레이닝


'살면서 한 번이라도 몸짱이었던 적이 있는가?'

'세상만사 모든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 유일하게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나의 몸이다.'


이런 말들에 혹하는 순간이 많지만 실천은 역시 어려운 것이다.


8. 사업구상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업이기는 하나 재미는 없다. 진짜 재밌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발견한다면 직업을 바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여러 사업 아이템들과 늦은 나이에도  시도해볼 수 있는 분야를 발견하기 위해 좀 더 가까이 실체에 접근해보기 위한 노력을 한다. 조직생활이 아닌 내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 설레게 한다.


9. 주식투자


서울 인경기도에서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 오면서 전세금 차액이 좀 남았다.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에 넣어 두기엔 아깝다. 대학 졸업 전 주식을 잠깐 했었고 2008년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손해를 보고 두 번 다시 주식에 손대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마침 내가 자유로운 시간은 주식거래시간과 딱 들어맞는다. 좀 다른 관점으로 아예 도박이라 생각하고 주식을 해야겠다. 무료함을 느낄 때 도박만큼 재밌는 건 없으니까.


10. 텃밭 가꾸기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사 온 곳이 하필 전원주택이라 마당 한편에 상추를 심어보았다. 햇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상추를 보며 많은 사람이 텃밭 가꾸기를 즐기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텃밭뿐만 아니라 주택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시도해 보려 한다. 간단한 목공 작업으로 필요한 소품들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조바심을 내서는 안된다. 차근차근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노력의 결과물이 만들어지겠지만 아직 마음은 계속 오락가락이다. 이거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들과의 끊임없는 싸움. 휴직이 끝났을 때 그동안 하고 싶었것들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이것이 세상의 논리를 거역하고 이 시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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