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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Apr 16. 2021

공무원 시험,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생을 건 시험. 최대한 효율적으로.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이렇게 시작한다. 학창 시절 어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이 시는 공무원 시험 문제에도 가끔 출제되었다. 시험공부 중, 문제집에서 드물게 이 시를 만날 때마다 내가 공무원 시험에 실패할 경우 맞닥뜨릴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아 더더욱 결연하게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육 개월 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시생이 되었다. 세상 어느 장인, 장모가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될지 안될지도 모를 시험을 보겠다는 사위를 반기겠는가. 처음에는 퇴사와 시험 준비를 비밀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애로사항이 생겼다. 평균적으로 하루 열 시간 이상을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시험인데 5분 거리에 있던 처가에 매일같이 불려 가는 것이다. 장모님은 저녁마다 다양하게 맛있는 메뉴를 준비해 놓으셨다. 요리 솜씨도 워낙 좋으셔서 메인 요리에 알맞은 술을 항상 곁들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애 좋은 처가 친척들까지 모이는 자리라면 그 시간은 훨씬 길어지고 필연적으로 과음이 따르게 된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다음날은 숙취와 두통으로 또 갈길 바쁜 수험생의 하루를 망친다. 충분한 공부시간을 확보하지 못함에 조바심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처가 식구들은 모르게 아내와 둘만 아는 비밀을 공유하는 것에 스릴을 느끼기도 했다.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다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친구를 찾아가 시험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얻기로 했다. 나에게 맞는 공부방법, 강사, 스케줄 등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시행착오에만 육 개월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고 겁을 주었다. 준비기간이 길어질수록 합격이 어려워지는 시험이다. 퇴직금 등으로 당장 쓸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어 푼돈이나마 모아둔 것이 떨어지면 아내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 최대한 수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공부할까. 먼저 가장 효율적이라는 공무원 시험의 성지, 노량진에서 학원을 다니는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성남에 살고 있었기에 오가는 시간만 네 시간에 달했고 학원 비용 또한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하릴없이 동영상 강의로 눈을 돌렸다. 마침 당시 생긴 지 얼마 안 된, 매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던 학원에서 38만 원만 내면 1년간 모든 과목을 무제한으로 수강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했다.


프리패스. 거의 모든 수험생활을 이 동영상 강의에 의존했고 과목별로 기본서, 요약집, 기출문제집 정도를 할인 구매하거나 중고로도 몇 권 구했던 것 같다.  정확하게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수험생활 내내 프리패스를 포함해서 교재들까지 총 백만 원이 덜 들어간 것 같다.


공부 장소로집의 서재방집에서 뒷산 하나만 넘으면 오갈 수 있는 성남의 수정도서관을 번갈아 이용했다. 도서관엔 자체적으로 식당이 운영되고 있었고 한 끼에 3000~4000원 정도였다.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체중이 느는 경우가 많다기에 저녁은 고구마 다이어트를 하며 최소한의 몸 관리를 했다. 수험기간은 1년이었고 온도가 적당한 봄가을엔 집에서, 냉방과 난방이 필요한 여름과 겨울엔 주로 도서관을 이용했다.

정말이지 최대한 경제적인 수험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


커밍아웃 전까지 처가에서의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시험 준비 사실을 장모님께 이실직고하니 별말씀 없이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어른들의 사기업보다는 공직을 선호하는 문화가 반영된 듯했다.

심각한 슬럼프에 빠진 적은 없었다. 공부는 열심히 하되 리프레시도 소홀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추운 곳으로 다녀왔기에(오로라를 보러) 중간에 태국 푸껫으로 아내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중간중간 친구를 만나 술 마시며 신세한탄도 하고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첫해라 공부 중에도 야구중계는 꼭 챙겨 보며 무료함을 달랬다.


담배를 끊었다. 스트레스 많은 수험생활 중, 어떻게 끊을 수 있었냐고 많이들 물어보았다.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이 시험에 실패할 경우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담배를 끊었다. 금연에 성공하면 이거 하나라도 남는 거니까.


그러는 사이 시험 시즌이 돌아왔다. 그즈음에 진도 앞바다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했다. 대형사건에 나라 전체가 어수선했다. 시험은 지역과 직렬에 따라 세 번 정도의 기회가 있었다. 첫 시험에 고배를 마셨지만 나머지 시험에서는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지는 않는다. 그간에 쌓여있던 지식수준이 다르기에 합격에 소요되는 기간도 천차만별이다. 다만 나는 절박함이 있었다. 늦은 나이인 데다 결혼까지 한 상태라 이것 말고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끼리 단기간 합격 비결에 대해서 많은 질문이 오고 가는 걸로 안다. 1년 정도 단기합격이라고 한다. 합격 비결을 묻는 이들에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많아 그만큼 절실했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시험 보기 정확히 일주일 전에 태어났다. 시험에 합격한 탓에 다들 복덩이라 했다.


아주 드물게 몇 개월 만에 합격하는 사람들도 있어 1년 만에 합격했다는 것은 크게 자랑스러울 만한 일이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수험생활에 비용을 들이지 않았다고는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험 전,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던 학원에서는 온라인 모의고사를 시행했고 1등에게 경차 한대라는 엄청난 상금을 걸었다. 경차를 받지는 못했지만 성적우수자로 프리패스 수강권을 받았다.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이라 수십만 원에 다른 수험생에게 양도했다.


합격수기 공모도 있었다.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감동적이고 극적인 수험생활을 올린 30명을 선발하여 무려 백만 원씩 지급했다. 공모를 보자마자 백만 원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원의 마케팅 홍보를 위해서는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사연을 뽑을 것이고 늦깎이, 결혼, 퇴사, 출산이라는 핸디캡이 있었던 나의 이야기가 30번째 안에는 충분히 들 수 있을 것이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결국 수험생활에 들어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들을  차치하고 계산한다면 강의, 교재비 등의 지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꼴이 되어버렸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도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결과가 좋았다.




시험 합격 후, 다음 연도 1월에 임용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시험공부할 때가 정말 행복한 것이었구나. 학생 때가 제일 좋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삼십 대 중반에 다시 한번, 격렬하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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