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래불사춘 Apr 29. 2021

우리집을 유난히 좋아했던 친구의 아이

춘천이라서, 주택에 살아서 좋았던 날


테이블에 마주 앉아 우리의 현재 나이를 탄식하듯 되뇌어본다. 또 우리가 처음 만난 때의 나이를 기억해 낸다. 알고 지낸 세월이 살아온 날의 절반 이상이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모여 대화를 나눌 땐 스무 살 봄에 처음 만난 그 느낌 그대로 거의 변함이 없다. 후덕해진 얼굴, 튀어나온 복부, 자글자글한 주름, 희끗희끗한 머리 정도 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다. 대학 신입생 때 만난 이후 쌓아온 관계는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뒤틀린 적이 없었다. 사소한 오해, 서운한 기억도 없다. 그냥 그대로의 서로를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다.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하기도 또 다르기도 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친구들에게 낯선 타지에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 생일은 4월 말로 대학 1학년이던 해, 첫 중간고사가 끝나는 금요일이었다. 매일매일 술 마실 수를 찾아 헤매던 대학 신입생에게 시험 끝나는 날 제대로 얻어걸린 친구 생일이라는 수는 60명 남짓이던 같은 과 모든 친구가 모인 성대한 행사가 되었다. 생일자를 교내 호수 연못에 던져 빠뜨리는 인습을 그대로 답습한 후, 술집 전체를 빌려 술독에 빠진 그날 이후로 매년 내 생일은 좋은 계절 탓에 여러 친구들과 모여 어울리는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이번에도 친구들을 내 생일 즈음에 춘천의 우리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서울에서 평소 1시간 20분 정도를 잡고 오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아침 일찍 출발하긴 했지만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친구들이 도착했다. 점심을 못 먹은 친구들에게 어떤 음식을 대접할까 고민하다가 코로나로 외식도 어려운 상황이라 그냥 닭갈비 막국수를 시켜먹기로 했다. 그 사이 친구의 아이와 우리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친구의 감탄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빌라나 아파트의 주거환경과 큰 차이를 느낀다 했다.


날씨가 좋았다. 볕은 밝은데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야외데크에는 흔들의자 2개와 딸아이 작업용 테이블이 있었다. 추가로 해먹을 꺼내서 설치했다. 이런 날 쓸 수 있는 아이템을 다 선보일 생각이었다. 뒤쪽 창고로 가서 텐트도 가져와서 펴주고 한참만에 배달된 점심을 먹을 땐 널찍한 돗자리에 캠핑 테이블을 펼쳐 사용했다. 이 환상적인 풍경과 분위기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좀 이따 어디로 다시 운전해  나가자는 계획이 오갔음에도 일단 먹고 보자였다. 냉장고 안의 청량감이 좋은 병맥주를 꺼내왔다. 한병 두병 그러다 페트병으로도 두어 개를 비운 다음에야 식사가 끝났다. 춘천 닭갈비 막국수는 웬만하면  다 맛집이다. 주문이 적당했는지 남긴 음식이 없었다.


술을 마셨으니 휴식을 좀 취해야 했다. 한 친구는 돗자리에 그대로 누워 드르렁거렸고 다른 친구는 해먹에서 흔들거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들과 그림도 그려주고 모래놀이도 같이 해주며 삼촌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날씨 좋은 날의 토요일 오후라 다른 집 아이들도 삼삼오오 집 밖으로 나와 놀고 있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한 데 어울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우리 집에 와서는 줄넘기를 하고 저쪽 집에서는 강아지한테 먹이를 주고 이동할 때는 자전거와 킥보드로 유유히 동네를 쏘다녔다.

이 광경이 친구에게는 또 임팩트가 컸었나 보다. 이 자유로운 분위기, 도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주말 오후의 모습에 감탄에 또 감탄을 했다. 사실 나도 이사 온 이후로 이렇게 평화롭고 완벽한 오후는 처음이었다.


구봉산에서 볼 수 있는 춘천의 일몰. 모두가 카메라를 들었다. 카페 종업원마저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어 구봉산으로 향했다. 전망이 좋은 카페로 들어가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은 순간 막 해가 산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춘천의 전경이 산 뒤로 넘어가는 해와 어우러져 절경이었다. 이 풍경이 내 것인 양, 친구들에게 보여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고 하나둘 조명이 들어오는 춘천의 모습까지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순댓국과 오돌뼈로 가볍게 저녁을 하며 바로 술자리를 열었다. 맥주가 동이 나고 소주도 끝이 보일 즈음 친구가 말했다.


여섯 살인 아이가 발달이 느리다. 유치원 원장이랑도 상담했는데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도움될 만한 센터도 다니고 있다. 코로나로 너무 집안에만 있었고 아이가 하나라 교류할 대상이 없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걸 최근에 깨달아 관련된 공부를 해가며 매일 몇 시간씩 돌보고 있다.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살게 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자주 놀러 와도 되겠냐.



실제로 친구의 아이는 또래보다 언어나 특정 반응에서 더딘 듯 보였다.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 아이는 실제로 우리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이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듯했다. 선천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주변 환경을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조성해주는 것은 부모의 도리이다.


항상 유쾌하고 밝고 인간미 있는 친구의 부탁에 당연히 자주 데려오라고 대답해 주었다. 심각한 표정이 한결 덜어진 친구의 얼굴에 연거푸 술잔을 비우면서 같이 웃었다. 과연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나. 생각해 보게 다.


새벽 두 시가 넘어 끝난 술자리에 그다음 날도 오전 내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야외에서 휴식을 취했다. 차가 더 막히기 전에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춘천의 볼거리를 더 제공해야 했다. 춘천은 역시 호수다. 지난번 엄마와 함께 드라이브한 코스가 생각났다. 각자의 차량으로 출발하며 일단 서면의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찍고 오라고 했다. 의암호 호수를 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는 여기서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잠깐 멈춘 김에 애니메이션 박물관도 외부만 슬쩍 둘러보는데 이곳에서도 평화로운 봄의 냄새가 난다. 넓은 잔디밭엔 수많은 텐트가 쳐져있고 곳곳에 가족, 친구, 연인들이 한가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자녀들과 공놀이를 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기업 사보에 나올만한 단란한 가족의 모습 그대로였다.


시원한 음료와 빵을 한 조각씩 고 다음 목적지로 김유정문학촌을 찍었다. 가는 길에는 광활한 호수가 끝없이 펼쳐졌다. 한 손으로 창 밖의 바람을 느끼며 운전하는 동안 춘천의 손님 접대 코스가 하나둘 완성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 신이 났다. 김유정 문학촌에 도착하니 오후 세시. 귀경길이 걱정되어 문학촌 구경은 뒤로 미루고 친구들은 막국수나 한 그릇 먹고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문학촌 인근의 막국수집도 화려한 인테리어에 훌륭한 맛으로 친구들을 환대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하고 우리 아이들은 문학촌에서 민화 그리기와 도예체험을 각각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근래 드물게 밀도 있는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햇살과 바람이 적당했고 석양과 야경이 좋았다. 취해서 하는 얘기들로 울컥하는 순간도 있었다. 춘천에서의 내 모습도 친구들의 눈에 좋아 보였을 것이다. 여가를 즐기는 춘천시민들의 모습과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 어딜 가나 기본 이상은 하는 닭갈비와 막국수 집이 있다.


춘천에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휴직 중,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