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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May 02. 2021

나와 정말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내가 누구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춘천에 있는 아내의 회사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강원도의 축제를 만드는 일을 하는 곳이다. 6월에 열리는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1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를 한다. 아무래도 6월이 다가올수록 바쁜 날이 많아지고 행사가 끝나면 조금은 여유로워진다. 그래서 인력을 운용할 때도 아내와 같은 팀장급은 상근직으로 근무하지만 팀원들은 4개월~6개월 단위의 계약직으로 채용을 한다.


올해 초 아내의 회사는 팀원들을 대거 채용했다. 축제행사의 특성상 채용된 스탭은 20대의 젊은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아내의 팀에도 세명을 채용했는데 아내의 팀원들은 모두 30대 이상이었다. 약간의 적응기를 갖고 서로 친해지기 시작했는지 집에 오면 팀원들의 이야기를 곧잘 한다. 팀원들이 모두 20대였다면 이렇게 친해지긴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춘천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아내의 회사 동료들이 반갑다. 아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매번 현장에 관객으로 참석하면서 아내의 동료들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도 삼삼오오 짝을 이뤄 세 차례나 놀러 왔다. 그러던 중 아내의 팀원 한 명이 나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도대체 왜? 어떤 부분을?


들어보니 이랬다. 본인은 육아휴직이 목표라는 것이다. 군대를 늦게 다녀와 제대로 된 직장에 취업을 준비하던 중에 아내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춘천으로 이사까지 와서 아내가 일을 하고 남편이 육아를 하는 우리의 모습이 매우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취업은 무조건 육아휴직이 자유로운 공기업 쪽을 노리고 있다고 했다.


누가 나를 롤모델이라고 하는 것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져 그 친구에 대해 좀 더 물어보곤 했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부분이 많아 한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 마침 집들이를 겸하여 아내의 팀원들을 집에 초대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그간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술자리는 매우 유쾌했다. 그 친구는 위트가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고급스러운 유머를 장착한 그는 회사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자리가 무르익고 다른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도 그는 홀로 남아 나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롤모델이라 했던 것은 단순 팀장의 남편에 대한 의미 없는 립서비스는 아니었다.




우리 주위의 각자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면 그런 삶이 우연히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런 삶을 살기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생각, 신념, 가치관 등 생각보다 많은 요소들이 얽혀 있고 그 근본적인 생각에 대해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 육아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전통적으로 엄마가 아이의 육아를 전담하고 남편은 회사에서 돈을 버는 형태의 가정만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면 아빠의 육아휴직은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일이다.


그와 나는 육아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엄마는 태생적으로 아이들과는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십 개월간 아이를 품고 있으면서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고통스러운 출산의 과정을 지나 일이 년간 또 모유수유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엄마와 아이 사이의 유착이 형성된다. 반면 아빠는 아이들과 이어진 느낌을 엄마에 비해 쉽게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자라면서 느껴왔던 엄마와 아빠 사이의 불균형한 애착 구조의 해소를 위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빠가 돌보는 시기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똑같아서, 육아를 할 기회마다 주저하지 않았던 나의 선택의 이유와 너무 닮아서 놀라움에 술잔을 한 번에 비웠다.


이상적인 배우자에 대한 생각도 같았다. 그는 조건을 많이 본다고 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경제적 조건이기도 하다. 세속적인 판단 기준이라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충실한 육아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조건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집안의 배경 같은 것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가계의 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상대를 선호하는 것이 앞서 말한 육아의 분배를 통한 아빠와 자녀와의 유대를 견고히 하는 방법이라 믿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어린 배우자는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부부는 서로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에 맞는 사람을 이상적으로 꼽아왔다.


마지막으로 가장 손뼉 치며 공감한 얘기는 '노력'을 대하는 자세였다. 어느 순간이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 이상 쓸만한 노력이 남지 않아서 그게 무섭다는 얘기였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 효율성의 관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어 노력하는 것만진리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남들에게 섣불리 꺼내 놓을 수 있는 인생철학은 아니다. 약간의 자존감, 자만심을 덧붙여 적은 노력으로도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도전하고 성취했을 때의 희열. 그 힘으로 지난날을 살아왔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여기에는 일종의 정신승리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경쟁사회에서 승자와 패자는 갈린다. 어쩔 수 없는 패자가 되기는 싫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노력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노력하는 법을 아예 까먹었다. 대충 살아도 그럭저럭 살아온 것에 감사하기는 하다. 얼마 전 책방에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일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못해 본 것은 콤플렉스가 되었다. 언제 한 번이라도 열정적인 때가 있었는지 쉽게 대답할 수가 없다. 어떤 새로운 일을 대할 때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러곤 '노력하지 않아서야'라고 위안을 한다. 노력만 했으면 잘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어떤 삶을 살든 자기가 만족하면 된다. 신세한탄이나 자기 비하는 종종 해도 괜찮다. 완벽한 삶을 사는 인간은 결코 없으니까. 마음속 깊이 품어 왔던 삶의 자세에 대해 이렇게 근원적인 부분까지 속내를 드러내며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의 어깨가 과도하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길 바라지 않는, 그는 나와 정말 비슷한 사람이었다.


내가 롤모델이라던 그에게 내키지 않은 노력까지 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지 않기를,

그리고 나에게도 대충 살아도 적당히 살 수 있었던 지난날의 행운이 계속해서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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