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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Oct 05. 2021

휴직 중, 꼭 한 번씩 찾아오는 슬럼프

마음이란 게 말처럼 쉽진 않아.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러나 굳이 하나하나 따지지 않기로 한다. 이건 그냥 내가 못났기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육아휴직을 거치며 깨달은 것은 휴직 기간 중 너무 거창한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아실현은 너무나 어려워서 번번이 목적 달성에 실패했었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괴롭히며 긴 슬럼프에 빠지곤 했다. 그래서 이번엔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겠다는 계획만 세웠었다.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자유로운 시간이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한 마음으로 쉬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시간을 의미 없게 보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인 줄 알았으나 후자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의 기나긴 시간을 이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되묻는다. 그냥 놀면 되잖아.


나는 사교적인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평일 낮에 무언가를 함께할 사람들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집안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은 하루 이틀만 해도 지겨워진다. 집에만 있으면 편한 것만 찾게 된다. 점심은 간편식으로 대충 때우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뒤늦게 남는 것은 후회와 현실 자각 타임뿐이다.


집 밖으로 무조건 나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침대에 쉽게 널브러지는 것도 이유이지만 집에서는 여기저기 해야 할 일들이 눈에 자꾸 띈다. 아 이 박스들 창고에 옮겨놔야 하는데. 애들 이불 빤 지 오래되지 않았나. 집 뒤편 벽 쪽으로 거미줄이 많이 생겼어. 냉장고에 안 먹는 음식들 버려야 하는데...  등등등


그래서 소설가들은 일부러 호텔이라도 잡아서 글을 쓴다고 한다. 해야 할 것들로부터 방해받을 요인들이 하나도 없는 환경이 되어야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일단 집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아침 9시 반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헬스나 골프를 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거나 악기를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그것이 내 일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경험상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같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 칼럼을 쓰는 것이나 높은 평점을 가진 카페를 찾아다니며 우아한 척 시간을 죽이는 것도 결국은 혼자를 더더욱 혼자로 고립시키는 일이다. 직장에 다니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것 외에도 사람들과 부대낌으로써 사회적 동물로 인정을 받는 것의 의미가 있음을 깨닫는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슬럼프의 구체적인 원인과 계기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겠다. 사실 아주 의미 없게 지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육아에 충실하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시도해보았다. 책을 읽고 글도 좀 써두고 이사 온 도시에서의 문화사업 공모에도 참여했다. 요리를 다시 시작했고 이웃들과 교류도 왕성했다고 생각한다.


무탈했다. 새로운 환경에 연착륙했다고 생각하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퇴사를 고려했고 그때부터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복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의 퇴사 건은 해프닝처럼 일단락되었지만 나의 거취에 대해서는 어지러운 생각들이 이어졌다.


현실적으로 복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선택지들이 많아진 것이 고민의 원인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 유치원에서 더 오래 머물게 되었으니 내 시간 활용법은 새로워져야 했다.


서울로 두 시간 넘는 거리 출퇴근을 할까 => 하루에 네 시간 넘게 오가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비효율적이야 => 그럼 직장 근처에 방을 구해서 주말부부생활을 해볼까 => 아무래도 아내가 혼자 직장 다니며 육아하기는 힘들어 => 그럼 춘천으로 인사교류를 계속 알아볼까 => 근데 서울로 오려는 사람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 그냥 휴직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쉬어볼까 => 근데 시간이 남고 돈이 너무 없는데 => 그래 복직을 하긴 해야 돼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좋으련만 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발목을 번번이 잡는다. 영리 활동의 금지, 겸직의 제한. 그렇다고 몰래 하기엔 내 상황을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양해가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일이 근무여건이 좋을 리 없다. 이거 참 공무원을 그만둘 수도 없고.


생각은 쳇바퀴 돌듯 아무리 돌아도 궤도 어딘가에 멈춰서 있을 뿐이다. 조급해 말고 천천히 하자. 라며 되뇌어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마음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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