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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Dec 15. 2021

글쓰기는 나에게 무엇인지

존재에 대한 규정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달밤'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수필이라는 장르를 소개하기 위해 수록된 그 짧은 글은 '길을 헤매던 화자가 어느 집 앞 평상에 앉아 있는 노인을 우연히 만나 같이 달구경을 하면서 막걸리를 한잔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기승전결도, 별다른 흥미로운 갈등도 없던 그 수필에 나는 매혹되었다.


달이 참 밝소.


과묵했던 노인과 화자 사이 대화의 여백과 그 크고 둥그런 달을 말없이 바라보는 정취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아직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그런 것이 있다. 사람들은 대화를 나눌 때 누구나 관심  있어하는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에 내가 달밤이라는 작품의 감성에 대해 누군가와 공유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대학에 와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친해진 친구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달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종의 교과서에, 비중도 크지 않았던 그 작품에 그 친구는 나와 거의 똑같은 감정으로 달밤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은 흥분한 마음으로 그 정취에 대한 느낌을 한참 동안 주고받았다.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 훨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던 친구를 통해 더 많은 작가와 작품의 세계로 나는 들어올 수 있었고 친구가 권해주는 책 몇 권을 읽던 수준에서 글을 써봄으로 얻을 수 있는 희열 같은 것도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소설의 3요소라 불리는 주제, 문체, 구성 중에서도 특히 문체에 대해 가장 많이 주목했고 작가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언어나 문체에 대해서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사람이 가진 특유의 말투. 그 사람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들 등.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의 어떤 부분이 좋은지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 유일하게 나의 언어를 좋아해 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쓰는 어휘나 표현들이 자기에게는 너무나 근사하게 다가온가는 찬사.

자연스럽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의 헬렌 헌트의 대사


It's best complimentary in my life.

가 떠올랐다.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단순히 몇 줄 안 되는 일기라도 꾸준히 쓰다 보면 나의 문장 같은(그런 것이 있다면)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소설 위주로 유명하다는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 보았다. 가장 먼저 압도당한 것은 작가들의 어마어마한 독서량이었다. 이름이 잘 알려진 국내 작가의 신간이나 몇 권 끄적이던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다독이 있어야만 비로소 창작의 세계에 발이라도 디뎌 볼 수 있겠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했다.


그러다 작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일상과 이야기, 내가 가진 생각에 대해 글로 표현해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는 절대 될 수 없지만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로서 '쓰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때 아주 적합한 플랫폼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올해 브런치 작가에 신청하여 엄정한 심사 후 합격통보를 받았다. 육아휴직을 시작할 무렵, 휴직기간 일상을 글로 남기고 새로운 환경과 낯선 도시를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겠다는 포부가 좋게 평가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루 한편, 최소 일주일에 한편은 쓰자는 다짐은 한 해동안 고작 40편의 울퉁불퉁하고 비루한 글 쪼가리만 남기고는 쉽게 사그라들었다. 특정 주제, 주거환경에 대한 내용이나 직업적인 에피소드의 구체성이 확보되는 글들이 포털 메인에 걸리는 느낌이 좋아서 일부러 그에 맞는 글들을 쓰기도 하고 또 그러는 것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렇게 끄적여서 뭐가 남냐고. 이게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왜 이렇게 붙들고 있는 거냐고.




어떤 모임에 가면 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의 주제가 이 전부인 양 부동산, 주식, 코인 등의 재테크. 또 주위의 성공사례들을 퍼 나르며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도 있다. 대화의 흐름상 관련된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정말 돈 이야기뿐인 사람에게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


그냥 다른 사람이다.


나도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돈에 대한 정보공유로 가득 찬 시간을 견디는 것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써볼 수 있는 시간을 얻기를 바란다. 물론 나의 글쓰기는 앞으로도 돈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써 본다. 매 순간순간의 나는 어땠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결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몰래 고백하는 심정으로 삶을 잘 정리해 보고 싶다.


딱. 한마디로만 어떤 존재를 규정해야만 할 때. 좋다, 괜찮다 같은 흔한 표현으로는 변별되지 않을 경우에, 그보다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순간에,

나는 '쓰는 사람'으로 설명되기를. 

바라는 아주 연약한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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