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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Mar 01. 2024

공무원도, 전원주택도 다 싫다.

낡아가는 마음에 대하여

2021년 3월 1일.

그러니까 정확히 삼년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오늘 2024년 3월 1일.

삼년동안 나에겐, 우리가족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장거리 이사는 우리의 삶을 좀 더 나아지게 했는가.




글을 오랜만에 쓴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춘천으로 와서 인사교류를 알아보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임기제 공무원 자리에 응시했고 이것이 덜컥 합격해버렸다.


반대로 아내는 다니던 직장이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향에 따라 없어지게 됐다.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다.


일을 한다는게 좋았다.

조건도, 동료도, 업무강도도 그렇게 나쁠것이 없었다.

그렇게 2년 가까이를 보내왔다.


그러다 최근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최초의 계약기간 2년에서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보통 내가 봐왔던 임기제 공무원들은 5년까지는 기본연장에 원하는대로 채용절차를 거쳐서 계속하는 자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일이 잘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 타의에 의해 잘릴수 있다는건 예상치 못했다.

특히 정치적 목적의 희생양이 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과연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일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우울증이 찾아 왔다.

사무공간도 지하창고 같은 곳으로 최근 이동하여 환경도 좋지 않은 상황인데 어떤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맡은 일이 밀리다 보니 부담은 쌓여가고. 이것이 터졌다. 모든일에 흥미가 없고 무기력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태가 되었다가 결국 아무것도 할수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병가를 썼다. 원래는 휴직리를 하고 계약만료까지 안 나가려고 했었는데 일단 일주일정도 쉬어보기로 했다. 달라질것은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정상적으로 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자리는 독이 든 성배였던 셈이다.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에서 조건은 좋지만 불안정한 자리로 이동할 때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당시로 돌아간다하더라도 난 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쨋든 4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차가운 세상에 맨몸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전의 경력을 써먹기는 쉽지않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고민해본다.

아이 둘 교육비, 4인가족 생활비, 내가 일을 하고 있다해도  많이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춘천에서 계속 살 것이지 여부에 따라서도 계획은 달라질 수 있다. 전원주택에서의 삶은 좋았지만 두 아이를 양육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악조건을 갖고 있었다.  도움받을 가족이 없는데다 학교와 거리가 멀어 무조건 아이들 픽업을 와야했다(학교앞 아파트에 비해)

그러다보니 그렇게 좋아했던 집도 이제 서서히 마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겨울을 지나면서 유리창이 3개가 저절로 깨지고 곳곳에 낡아가는 모습, 집 뒤편으로 부지를 하나 만든다고 공사차량이 드나들다 지금은 공사자재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들.


진절머리가 난다.


사람마음이 간사한 것인지 모든 게 첨부터 잘못되었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수 밖에 없다. 차라리 잘 됐다 생각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야 한다.


우울증으로 인한 몸살까지 겹쳐 일주일 동안 누워만 있었는데 털고 일어나야지. 그리고 회사와 마무리를 잘 하고 이제 아주 잠깐동안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봐야겠다.

답이 나오면 좋겠다.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첫 구절을 자주 떠올려야 겠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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