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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잎 Oct 03. 2020

결혼 후 엄마와 산책,  당당하게 살라고 했다

추석을 맞아 친정에 방문했다.

엄마는 딸이 쉬었으면 하는지

혼자서 음식을 준비했고,

도와주지 말라고 했다.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선 산책.

엄마는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했다.


그릇은 엄마가 저번에 사라는 거 샀어?


가스는 설치했어?

냉장고는 위치 바꿨니?


커튼이나 블라인드는 설치했니?


살림에 아직 서툰 딸이 걱정됐을까?

엄마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엄마의 질문은 대부분

입주한 집에 가구나 가전들이 다 채워졌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내가 뭐만 말하면 엄마는

‘엄마가 그거 갖다 줄게’,

‘아, 엄마가 그거 사다 줄게’로 끝났다.


특히 그릇의 경우는 특정 브랜드까지 말하며

이 그릇을 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알겠다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해도

엄마는 계속해서 물고 늘어졌다.

시큰둥한 나의 반응에 엄마는 안 되겠는지

직접 그릇을 구입해서 갖다 주겠다고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는 잘 가진 않았지만,

그릇을 받은 오늘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엄마는 다음날 아빠를 대동해

그릇을 잔뜩 사 들고 집에 찾아왔다.

밥그릇, 반찬 그릇, 국그릇,

심지어 냉면 그릇까지 구입해왔다.


그릇에 붙은 스티커를 떼며 하는 말이 있었다.


‘사람들이 놀러 오면 그릇 다 본다.
안 그럴 것 같지? 너 나중에 무시 당해.’



행여 누군가 딸을 깔볼까 봐

노심초사한 마음에 엄마가 선물한 그릇이었다.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엄마가 예전에 그러한 일을 겪은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 후로 엄마는

늘 나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시댁에 갈 때는

늘 선물 한 보따리를 손에 쥐어주며

가져가라고 건네주고


시댁에 갔다 오면 어땠는지

내 기분을 살피기 바빴다.


딱히 힘든 일이 없었는데

엄마는 행여 딸의 마음에

생채기가 나진 않았을까

계속 내 마음을 어루만져줬다.

그 마음이 참 따뜻했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산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당당하게 살아. 가슴 펴고


결혼했다고 경력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결혼했다고 하고 싶은 거 참지 말고,

결혼했다고 성격 바꾸지 말고

내 딸답게 당당하게 살라고 했다.


엄마는 그러지 못했을까?

딸은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생각에

엄마는 나에게 당당하게 살라고 하는 걸까?

이유는 모른다.


그저 당당하게 살라는 말에

엄마의 사랑이 담겨있다는 것만

확실히 알 것 같다.


엄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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