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떠납니다
(2019년에 다녀온 유럽 여행 에세이입니다)
chapter1. 포르투갈로 떠나다
일에 치여, 삶에 치여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던 나와 남자 친구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현실’이라는 감옥에서 도망쳐야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우리는 보상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렇게 선택한 도피처는 바로 유럽 여행이었다. 회사에 일을 그만둔다고 말한 당일, 비행기 표를 예매했고, 우리는 그렇게 속세의 짐을 벗어던지고 유럽으로 떠났다.
‘유럽’이라는 도시를 처음 가보는 터라 비행기 표는 왕복으로 끊었다. 이렇게 표를 산 것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되지만...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유럽 여행지는 포르투갈, 스페인 이렇게 나라만 정하고, 구체적인 여행지는 정하지 않고 떠났으니까. 유럽은 보면 볼수록 머물고 싶어지는 곳이라는 걸 까맣게 모른 채 출발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외국인이 가득한 공간에 앉아있는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아 계속 긴장됐다. 샬롸샬롸 하는 소리가 계속 내 귀를 통해 들어와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나와 남자 친구는 계속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었다. 외국에 가는 비행기라 승무원들이 다 외국인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3명의 한국인 승무원이 있다고 했다. 안 되는 영어로 어떻게 기내식을 달라고 하나, 어떻게 물을 달라고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친구는 비행기를 탄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꼬낭 술을 시켰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탓에 술 먹고 자려고 했던 것 같다. ‘꼬낭’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술이었는데 스펠링은 ‘conac’이었다. 나는 어디서나 잘 자서 술을 마시진 않았다. 술을 마신 남자 친구의 소감은 술이 장기로 내려가는 게 다 느껴질 정도로 따가운 술이라고 했다. 남자 친구가 술 먹은 것을 확인하고 잠에 들었는데 남자 친구가 계속해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술이 몸에 안 맞았다고 했다. 트림 20번, 방귀 20번을 꼈다는 남자 친구. 계속 식은땀이 나고 토할 뻔했다고 했다.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참으며 위로해줬다.
긴 비행시간 탓에 사람들이 하나 둘 지쳐가는 듯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옆 좌석이 비어있어서 편하게 좌석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봤다. 부럽다고 생각하며 우리 좌석으로 돌아왔는데, 옆에 앉은 분이 퍼스트 클래스로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우리도 좌석을 넓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남자 친구가 좌석 끝에 앉아 무릎을 내어주며 편하게 누우라고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두 다리 뻗고 자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유럽의 거리를 걷는 데도 유럽에 왔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분주함과 바쁨 대신 여유롭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우리를 감쌌다. 남자 친구는 나에게 발걸음이 닿는 대로 움직이자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그저 걷고 또 걸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했다.
너무 아름답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딜 가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고, 한국에서 거리를 걷던 것과 달리 포르투에서는 앞 뒤를 보며 걸었다. 앞에서 볼 때의 느낌과 뒤돌아서 볼 때의 느낌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는 나를 웃기겠다고 뱅그르르 돌며 길을 걸었다. 거리에는 귤나무를 비롯해서 하얀색 꽃나무들이 마을의 따뜻함을 더했고, 곳곳에 아틀라쥬는 평범할 수 있는 벽면에 특별함을 더하고 있었다. 남자 친구는 유리 기술자라서 유럽의 유리를 유심히 관찰했는데 유리가 너무 약한 재질이라고 했다. 나는 그저 포르투 거리의 아름다움만 보고 있었다면, 남자 친구는 사업적인 마인드로 유럽을 관찰했다. 그 모습이 참 멋있었다.
우리가 포르투갈에서 먹은 첫 끼는 미스터 피자였다. 우리나라의 미스터 피자와 비슷한 브랜드 이름이라서 저절로 들어가게 됐다. 피자는 코스트코에 파는 대형 피자를 조각채 사 먹는 형태였다. 2유로에 한 조각 피자를 먹을 수 있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맛이라 더 꿀맛이었다. 포르투에 도착하자마자 맛집을 서치 하고, 찾으러 다녔으면 진을 뺄 뻔했는데 길을 걷다가 익숙한 가게에서 음식을 먹게 돼서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가게 내부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유럽 거리에서 피자를 먹으니 마치 유럽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니 열심히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도 앱을 켜지 않고, 골목 사이를 계속해서 들어갔다. 그러다가 남자 친구와 환상의 스폿을 발견했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유명한 동루이스 다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 었다. 그리고 마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 통일된 지붕들의 색감,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빛이 강에 반사되는게 참 예뻤다. 정말 말이 안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계속해서 사진을 찍다가 남자 친구와 동루이스 다리 광장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동루이스 다리 광장에는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듯했다.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팝핀을 추는 사람도 있었고, 가만히 멈춘 상태로 있다가 박스에 돈을 넣으면 구두를 탕탕 치는 예술가 할아버지도 있었다. 자신만의 악기를 가져와서 자유롭게 버스킹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실력을 다 떠나서 본인의 색깔로 예술을 표현하는 것이 멋져 보였고, 스스로 행복해하는 게 보여서 좋았다.
남들이 다 와이너리 투어를 한다길래 나도 투어를 하고 싶다고 남자 친구에게 말했는데, ‘술도 잘 못 먹는 애가 웬 와이너리 투어냐고’하면서 반대했다. 결국 우리는 와이너리 투어를 안 하고 가이아 케이블 카를 탔다. 동루이스 다리와 포르투 마을 곳곳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속으로는 왜 여기까지 와서 그 좋다는 투어를 안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남자 친구에게 조금 불만이 쌓였지만, 투어를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다보는데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연인들과 벤치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포르투 와서 느낀 건 곳곳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다. 풀밭에 누워 책을 보기도 하고, 이동할 때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좀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들고 다니면서 읽을 정도는 아닌데, 이 사람들은 거리에서 책을 읽는 게 자연스럽고 몸에 밴 듯 보였다. 괜히 따라 해 보고 싶었다. 이때 유럽 사람들이 책 읽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는지 한동안 한국에 와서 책을 열심히 읽었다. 유럽 다녀온 걸 티 내고 싶었나 보다.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포르투의 일몰을 보지 못했다. 조금은 속상했지만 남자 친구가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냈다. 바로 ‘일출’을 보자는 것이었다. 어쩜 이렇게 똑똑한 생각을 하는지, 남자 친구가 내 상한 기분을 잘 풀어주는 모습을 보며 한번 더 반했던 것 같다. 남자 친구가 일몰 포인트 park를 찾아주고, 같이 앉아 동루이스 다리의 야경을 구경했다. 정말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오늘 하루 포르투에서 시간을 보낸 건데, 이 도시에 반해버렸다. 어떤 사람은 포르투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고 한다. 정말 그럴만한 게 볼 것도 많고, 참 아름다운 도시라 머무는 것만으로 행복한 기분이 들 것 같다.
<epilogue>
포르투를 여행하며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발견한 것이 있다. 첫째, 나는 굉장히 조급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여행이 힘들어지기도 했다. 뭔가 포르투에 왔으니 특정 여행지를 꼭 봐야 하고, 특정 투어를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여 조급하게 돌아다니려 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은 내가 유럽 여행에서 갖고자 했던 ‘여유로움’을 방해했고, 한국에서 바쁘게 일했던 ‘조급함’을 다시 일깨워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정말 ‘조급함’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조급함 대신 ‘enjoy’하는 마음, 즐기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거금을 들여 유럽 여행에 온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행복한 여행을 불행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조급함’을 버려야 했다. 그저 즐기자! 나에게 주어진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