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각본 02] 꿈의 중개소

단편적으로 꾸었던 꿈들의 엮음.

by 김계환

해당 이야기는 어느 정도 개별적으로 꾸었던, 그리고 꿈의 내용들이 연결되던 지점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입니다.





하얀색 방 안에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모습을 보며 시야가 밝아져 왔다. 시야가 밝아진 후에 눈에 먼저 들어온 사람 수는 두 명, 나는 방안에 나타난 사람들 중 하나였다. 두 명 중 한 명은 원래 알고 있었던 사람인 마냥 낯이 익었다. 사실은 어디서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었겠지만. 어쩌면 지나가다가 스친 사이 정도는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똑같은 모양새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하나씩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략 여섯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중에는 이리저리 펜던트를 흔들어 보는 사람도 있었고 공중에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무게감을 확인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나만이 목걸이를 만져보는 것이 아닌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보거나 구경하고 있는 듯했다. 내 목에도 같은 목걸이가 걸려있었고, 손으로 더듬어 잡힌 펜던트는 그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니 얇고 짧은 피리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금속 재질인지 차가운 쇠의 감촉이 먼저 느껴졌다. 기능적으로 피리와는 상관은 없는지 작은 구멍 같은 것이 위와 아래쪽에 두 개가 뚫려 있는 물건이었다.


구멍에서는 작고 어렴풋이 들리는 정도의 잡음이 나오고 있었다.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대어 보니 여러 명의 사람이 대화를 하는 것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아무래도 어딘가와 통신으로 연결된 물건인 듯했다. 그렇게 펜던트를 만지고 있는 와중에 한 명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낯선 환경에 도착해서 눈을 떴을 텐데 설명해줄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끼리 돕고 싶다는 말이라던지. 한창을 주절거리며 말을 이어가던 사람은 설명은 충분했다고 생각을 했는지 자신이 꺼내려고 했던 말의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짧게 줄이자면 원래의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었던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은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생활하는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일반 적이며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게임을 하듯이 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런 설명을 해주던 사람이 낯이 익은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낯이 익다는 감정이 강제로 주입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 사람이 설명을 마치고 접촉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총 세명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다가가지 않았고, 그 사람들은 그저 목걸이를 만지고 있거나 벽을 두들기며 자신을 내보내 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세명에게 팀에 합류하겠냐는 말을 건넨 후 낯이 익은 그 사람은 침묵을 이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충분히 생각은 해봤는지, 마음의 결정은 했는지 물어봤다. 흥미는 동하지만 낯선 공간에서 섣불리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사태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답을 보류해도 괜찮겠냐고 답했다. 그 사람은 이런 태도로 답을 하는 사람이 내가 처음은 아닌 듯 별 문제없다며 이 공간 안의 우리에겐 정말 많은 시간이 허락되어 있다며, 얼마든지 라고 대답해줬다.


나 말고 제안을 받았던 나머지 두 명은 해당 집단에 소속되는 것으로 대답을 한 듯했다. 대단히 반가운 미소로 그들을 맞이하면서도 입꼬리나 눈매에서 달갑지 않은 기색이 언뜻 보였다. 조심성 없는 모습에 실망을 한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 의중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뒤에 제안을 받은 사람 중 나를 제외한 두 명과 제안을 건넨 사람까지 해서 총 세명은 목에 걸린 피리 모양의 펜던트에 대고 무어라고 웅얼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제안을 건네었던(편의상 A 라 부르겠다.) A의 펜던트에서 경미한 진동이 울린 뒤 귀에 가져다 대는 모습은 별달리 어색해 보이지도 새삼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이곳 생활을 오래 했다는 뜻이겠지. 눈인사를 건넨 A는 나를 지나쳐 가며 조금 있다 보자는 뉘앙스의 인사를 건넸고, 뒤돌아 본 적이 없어서 내 뒤에 문이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그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문 너머의 풍경은 대단히 이색적이었다. 사물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물 자체가 빠르게 움직이기보다는 문을 경계로 해서 흐르는 시간이 다른 듯해 보였다. A는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문을 등지고 설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서는 두 명의 옷 덜미, 정확하게는 뒷목을 잡은 자세로 문을 등지고 몸을 기대듯 쓰러지며 문 너머로 사라졌다.


세명의 사람이 문 너머로 쓰러지듯이 사라지고 난 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은 많았고, 선택지는 없었다. 마냥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것도 지루했던 터라, 처음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방의 반대편 끝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무엇인가 물건을 파는 듯한 곳이었다. 물론 A 에게서 설명을 들었듯이 나에게 돈이라곤 없다. 아니 돈은 있겠지만 그게 이곳에서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이곳의 화폐는 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가 들어올 때 결과적으로 획득하는 듯했고, 임무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당연히 이곳에서 쓸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구경하는 데에는 돈이 안 드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발걸음을 옮겨 물건을 팔고 있는 간이 가판대로 향했다.


그리고 가판대에 도착했을 때에 알 수 있었다. 이 방에 나타난 이후에 타인의 손에 이끌려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 동향을 파악하기로 한 것은 천만다행인 선택이었다. 가판대와 상인이라고 생각했던 장소는 게임을 시작했을 때 필요한 것과 정보를 나눠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통해서 얻은 정보는 이러했다.


1. 본 게임의 참가자 구조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통제권자, 통칭 마스터] - [세력권자, 통칭 클라이언트] - [임무 수행자, 통칭 수행인]

2. 이곳 하얀 방은 대기실로 불리며, 임무 수행 및 임무지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대기 공간이다. 다만 신규 인력의 출몰 시에 해당 장소에 나타나게 되며 해당 시점은 전 수행인에게 공지된다.

3. 임무를 받아 수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목걸이를 가진 채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 즉 , 수행인의 자율과 판단에 근거하며 이와 관련하여서는 어떠한 강압과 강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3. 임무를 의뢰하는 사람은 클라이언트이며, 교신기를 통해 수행인에게 전달된다.

4. 수행인은 교신기를 통한 대답은 최소화한다.

5. 클라이언트는 세력 다툼의 형태로, 수행인은 임무 접수 및 수행의 형태로 해당 게임에 참가한다.

6. 클라이언트의 신분은 일반적으로 유명인 혹은 권력계층에 속한 사람이다.

7. 수행인의 신분은 일반적으로 세력과 관계없는 일반인으로, 수행인의 임무 수행으로 클라이언트들의 세력 싸움을 대체한다. 이것이 해당 게임의 주요 골자이다.

8. 수행인 사이에는 어떠한 상하관계도 강요되지 않으며 강제적으로 형성된 상하관계는 마스터에 의한 제재 대상에 포함된다.

9. 다만, 자발적으로 형성된 상하관계는 묵인된다. 이에 대하여 마스터는 어떠한 강제적인 간섭을 하지 않는다.


[수행인 신분 관련 공지]

1. 수행인의 경우 임무 수행을 위한 특이하거나 특별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

2. 가지게 된 능력은 본인에게 적합한 방향을 설정하고 직접 찾으며 가다듬어가야 한다.

3. 능력의 획득은 확률적으로 이루어지며 반드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4. 다만, 상세하게 인지하고 있는 능력의 경우 능력의 획득 기회에 해당 능력을 선택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정도의 상황 파악을 마친 직후 첫 번째 임무를 마치고 2명의 인원과 함께 들어오는 A의 모습이 보였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아마도 A 가 첫 번째 임무로 수행인을 선별해서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가 자발적인 상하관계를 유도하는 행위인 듯했다.


A와 일행의 출현과 함께 정보를 나눠주는 사람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주변에 서있는 나를 보며 짓는 미소에는 데리고 나갔던 두 명에게 지어주던 속을 알 수 없는 꿍꿍이와 같은 미소가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조심성 많고 새로 들어온 수행인 중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 반가웠던 것일까. 저 두 명의 수행인은 이제 A 혹은 A가 속한 집단에 이끌려 다니면서 상하관계가 없는 이 동네에서 자발적으로 아랫사람을 자청하며 지내게 되는 걸까.


정보를 얻은 내가 A의 제안을 수락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은 A도 알고 있는 듯했다. 처음 건네었었던 제안에 대해서 다시 언급은 없었으며, 앞으로 자주 보길 바라고 소식 자주 들려주길 바란다는 말과 자신의 연락처를 넘겨줬다. 물론 연락처를 넘겨주면서 목걸이의 사용법도 함께 알려주었다. 연락하는 방법과 연락처를 저장하는 방법들. 그러곤 두 명의 수행인을 데리고 한쪽 벽으로 가서 서더니 나를 한번 쳐다보고, 마치 내가 보라는 듯이 천천히 벽에 목걸이로 몇 번을 두들겼다. 잠시 뒤 벽 위에는 문 하나가 새로 생겨났고, 그 문을 열고 다시 눈인사를 건넨 A는 두 명의 수행인을 데리고 함께 사라졌다.


마치 첫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철저하게 박탈한 두 명은 그 사실 조차 알리가 없는 채 안도감이 가득한 얼굴로 문 너머로 사라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짧은 각본 01] 진입금지구역의 월세 내는 주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