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각본 01]
진입금지구역의 월세 내는 주민들

지난밤에 꾸었던 꿈 이야기

by 김계환

해당 이야기는 기억에 남아버린 꿈의 내용을 바탕으로 창작된 글입니다.

2021.11.18




나는 분명 길을 걷던 중이었다. 어디서부터 걸어왔고,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매번 그랬다. 밤거리에 조명들은 빛을 내기도 하고 꺼져 있기도 하는 분위기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이버 펑크에 가까운 분위기를 연상하면 맞겠다. 일부 네온사인에서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 지지직거리며 소리를 내는 형광등도 있었다. 습기 때문인지 가동되고 있는 에어컨 실외기도 여럿 있었고, 하수구에서는 정체불명의 증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건물 사이 혹은 건물 뒤편의 골목길을 나는 걷고 있었다.


저 멀리에 보이는 전광판에는 골목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불특정 테러단체의 수작인 건지, 테러에 가까운 일종의 현상인 건지, 골목길에서 기억을 잃고서 발견되거나 사람이 실종되는 일이 자주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뉴스를 보면서 걷던 와중에 저 멀리 보도블록이 투두둑 하고 갈라지더니 출입문 같은 구조물이 달린 통로 하나가 올라왔다. 깜짝 놀라 뒤돌아봤더니 정처 없이 떠돌아 걷던 나는 진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된 장소에 들어온 상태였다. 뒤숭숭한 뉴스를 접한 직후여서 큰일 났다는 생각에 뒤돌아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통로에서 사람이 한 명 걸어 나왔다.


그 사람은 나였다. 키나 이목구비가 같은,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의 색상은 다른. 내가 입고 있던 것은 남색 계통, 어두운 계통 색상의 옷과 바지 그리고 신발이었고, 그 사람이 입고 있던 것은 카키색과 베이지 계통의 밝은 색상의 옷과 바지 그리고 신발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봤다. 그 사람은 땅 아래에서 올라온 나, 나는 땅 위에서 지내고 있던 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진입금지구역에서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땅 아래의 나는 땅 위의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줬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은 구역에서 거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에서 지내기 위해 늘 월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월세를 안 낼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다들 월세를 안 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을 지내기 위해 매번 반복적으로 월세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땅 위를 늘 선망하기 때문에 통로를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리고 땅 위의 내가 통로가 열릴 곳 근처에 있지 않으면 통로를 열 수 없다고 했다. 그런 통로를 열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인데, 땅 위 사람들이 대부분 진입금지구역으로 지정해 두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땅 아래의 사람들은 땅 위를 선망하며 늘 나가고 싶어 하고 단순히 나가는 행위 자체가 목표라고 했지만 쉽게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땅 위로 나갈 수 있게 된 땅 아래의 사람들은 땅 위로 나가는 순간 필연적으로 또 다른 자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땅 아래의 사람들은 땅 위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땅 아래로 땅 위의 자신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이야기를 나눠본 땅 위에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지쳐 있던 터라 강제력 없이 땅 아래의 나를 대신해 땅 아래로 들어간다고 했다.


땅 위의 나는 땅 아래의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줬다. 땅 위의 나는 정처 없이 목적 없이 걸어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지낼 곳은 분명히 있지만, 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땅 위의 나는 어둡고 습한 세상 속에서 하나의 부속품처럼 정해진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지불해야 할 월세가 없기 때문에 목표로 하는 지향점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땅 아래에 대한 이야기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실 이외에 벗어날 곳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전광판을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는데, 그것 이외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최근에 뉴스에 골목길이 뒤숭숭하고 기억을 잃은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건 땅 아랫사람과 땅 위 사람이 서로 위치를 바꾸면서 생긴 일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대화가 끝나고 난 뒤에 땅 아래의 나는 본인이 선망하던 땅 위의 세상이 마냥 아름답고 꿈과 같은 곳은 아니라는 것이라 느낀 듯했다. 진입금지구역이지만, 월세를 내야 하지만 땅 아래에서 자신이 조금 더 행복했다고 여기는 듯했다. 땅 아래의 나도 나와 같은 나이니까, 생각이 크게 달랐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땅 아래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통로 너머로 보이는 혹은 느껴지는 따스하고 밝은 분위기는 내가 지내던 땅 위의 어둡고 습한 분위기와는 반대로 느껴졌다. 땅 아래의 나는 땅 위를 보고 난 이후 다시 월세를 내는 생활을 계속하더라도 땅 아래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땅 위의 나도 땅 아래로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통로를 통해 땅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나무로 된 통로를 거쳐 도착한 땅 아래는 밝고 따스한 곳이었다. 땅 위의 세상과는 달리 건물은 낮았고 나무는 울창하게 자라 있었다. 바람은 선선했고, 바람은 기분 좋게 불어왔다. 길들 사이 집들 사이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다. 땅 아래의 사람들은 땅 위를 선망하기에 그들은 하루하루 결실을 맺으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땅 아래의 내가 데려온 나를 신기하게도 바라보며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땅 위에서 온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단지 관심을 기울일 뿐이었다. 마치 서로에게 질문은 땅 위의 나와 땅 아래의 내가 만났을 때만 허용되는 것처럼.


땅 위를 알기에 땅 위로 나가는 것을 목표로 땅 아래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이들과

땅 아래를 알아 버렸기에 땅 아래로 가고 싶어 하던 땅 위의 사람들과

땅 위가 선망하던 것과는 달라 땅 아래로 다시 돌아온 이들

이들이 땅 아래에서 지내고 있었다.


땅 아래를 모르기에, 알 이유가 없기에 땅 위에서 선망이 대상이 된 채 지내던 이들과

땅 아래를 알게 되었으나, 갈 수가 없기에 땅 위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이들

이들이 땅 위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땅 아래를 알아버렸지만, 땅 위 사람들의 진실을 땅 아래에 이야기해주려던 나 자신

나는 땅 위 세상의 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 땅 아래 모든 이들의 시야가 나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땅 아래에서 쫓겨났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땅 위에서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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