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한 명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3학년 부장만 공석이에요."
교감 선생님의 푸념과 지목될까 두려운 선생님들의 긴장으로 회의 공기가 사뭇 무겁다.
난 새 학교로 전근 갈 몸이라 제삼자의 눈으로 양쪽을 본다.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씁쓸할 뿐이다.
작년 2학년 아이들은 매일 굵직굵직한 사고를 쳤다. 하루에 서너 번은 화재경보기가 울렸는데 이 정도는 매우 귀여운 축에 들고. 복도와 교실 유리창이 깨졌으며, 남자 화장실 문은 박살이 났다. 최근에는 복도 천장 타일이 부서지기도 했다.
2학년 담임을 했던 일 년동안 쉬는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도 생활 지도의 연속이었기에 차분히 앉아 음식을 씹어 삼킨 기억이 없다.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카페인 수혈을 어찌나 했던지 머리만 대면 자던 나는 심각한 불면증에 잠 못 이루는 날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건 사고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가장 충격적인 일을 꼽자면, 학부모가 옆반 담임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고소하여 반년 이상 당사자는 물론 다른 선생님들까지도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회의감과 공황 속에서 버틴 일이 아닐까 한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한다면, 성장하면서 잘못하는 일은 애정으로 바로 잡고, 기본예절과 생활 태도를 가르쳐야 할 텐데. 그런 학생 부모들의 공통점은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황의 핵심을 보지 못하고, 격한 상황으로 치달아 지도하는 과정에서 나온 한 마디를 물고 늘어지기 바빴다. '네 담임 선생질 그만하게 해 주겠다. 기죽지 말라.'는 말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 아님을 왜 모르는 걸까? 든든한(?) 부모의 말을 들은 아이는 더 기고만장해져 갔다.
초여름이 시작될 즈음, 점심시간이었을 것이다. 인근 대학 축제에 아이돌이 오는 날이라 아이들이 줄줄이 조퇴를 하러 왔다. 옆 반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잘 달래서 보냈는데, 그 아이는 교무실을 나가자마자 게시판을 내리쳤고, 교실에 들어가 욕설을 내뱉으며 의자를 집어던졌다. 1학년때도 수많은 교권 위원회의 주인공이자 한 학기만에 담임 선생님이 휴직을 하셨고, 도리어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 아이였기에 그 누구도 섣불리 말리지 못하고, 겁먹은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피하고 있었다. 옆 반 담임 선생님은 쿵 소리에 바로 나가셨다. 수업과 생활 지도에 지쳐 점심을 먹으러 갈 기운도 없어 잠시 앉아 쉬는 중이었던 나는 그 선생님의 뒷모습이 너무 걱정스러워 뒤쫓아 나갔다. 자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화가 나면 눈빛이 돌변하고, 보이는 대로 던지고, 때려 부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복도 한 켠에서 선생님보다 키가 큰 아이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즈음 난 준비해 간 수업은커녕 다리를 꼬고 반 드러누워 있는 아이들에게 '바르게 앉아라.'부터 시작하여 기본적인 태도부터 일장 연설을 해야 하는 이 상황과 반항하는 아이들을 대하는 데 지쳐 있었다. 이 직업에 대한 사명감 같은 마지막 한줄기 끈을 아슬아슬하게 부여잡고 있는 중이어서였을까. 대치하고 있는 아이와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자 온몸에 힘이 풀리며 눈물이 흘렀다.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을 교실로 들여보내고, 그 와중에 또 싸우고 있는 다른 아이들을 말리고 교무실로 데리고 오면서, 다른 선생님들께 도움을 청했다.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순간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울렸다.
얼마 후 소식을 듣고 온 학생부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은 최초 목격자인 내게 진술서를 요구하셨다.
"그러니까.. 이 학생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나요?"
도움이 되고자 뛰쳐나갔으나 구체적인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억해 내라는 요구에 멍해졌다. 이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학부모가 담임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고소했고, 그 소식을 들은 동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오열했다.
매년 담임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일 년 동안 지지고 볶고 공들이면 아이들은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그 보람으로 18년을 버텨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경력 30년이 넘어가는 선배 선생님도 이 아이들은 너무 힘들다며 일 년 만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희망하셨다. 예전 같으면 시간을 쪼개 더 상담도 많이 했을 텐데, 단합 대회도 더 많이 했을 텐데... 기본예절이 장착되지 않은 아이들을 수시로 불러 이야기하느라 모범적인 아이들을 챙기지 못했다. 이렇게 애를 써도 변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도 마음의 문을 조금 닫아버렸다.
그렇게 종업식. 마지막 날을 맞았다.
눈이 많이 왔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타이어의 미끌림에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겨우 출근했다.
마지막 날까지 휴대폰을 내지 않고, 지도에 불응하며 속상하게 하는 다른 반 아이들을 보며, 전혀 마지막 날의 분위기가 아닌 모습에 서운해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그저 무사히, 담담하게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씁쓸한 마음을 먹고 있던 중.
" 선생님, 재운이 싸워요! " 조회 1분 전, 우리 반 몇 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촛불을 밝힌 케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칠판에는 그림과 감사 메시지로 한가득 꾸며 놓았다. 용돈으로 산 선물과 손 편지를 내미는 아이들을 보며, 여러 감정이 뒤섞여 눈물이 흘렀다.
개학 이튿날 큰 싸움으로 상대 학생을 전학 보내버린 여학생은 그 봄이 다 지날 때까지 내 눈을 피하고, 인사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나만 보면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고, 내 지도에 불응하는 아이가 있으면 다소 험한 말로 내 편을 들어주는 의리녀가 되었다.
압수한 전자 담배만 서너 개인 남학생도 위협적인 도끼눈은 이제 세상 순한 양의 눈빛으로 바뀌고, 내 잔소리가 시작되면 먼저 공손한 손 동작을 취한다. 청소 시간에는 고무장갑을 척척 끼며 '제가 교실을 닦겠습니다!' 했는데, 이 한 마디에 스르르 마음이 풀리곤 했다.
난 전형적인 I 성향으로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할 때 외에는 말하는 것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학교에서 하루치 총량을 훨씬 넘기는 말을 했으므로, 그것도 결국 지나치지 못하고 끝내해 버린 잔소리였기에 퇴근하는 길에는 마음이 텅 비다 못해 시렸다. 이 기분을 저녁마다 느끼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아이들의 롤링 페이퍼에 '저희가 잘못할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르쳐주시고, 안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꽤 등장했는데, 오랫동안 시렸던 마음이 아무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을 맡을 선생님들을 위해 반 배정 회의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일년 전 2~3명의 별표가 있었던 명렬표를 받았지만, 진급시키는 우리 반에는 각별한 지도가 필요한 인물이 없다. 그렇게 3학년에 올려 보내게 된 점이 참 다행스럽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과 애정을 충분히 표현해 주지 못해 아쉽다. 내 일 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마지막 날 남긴 단체 사진을 보며 조용히 감사를 표한다.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협동화, 체육대회에 탄 3등 상장, 시간표를 다 떼고, 다시 한번 남겨두고 온 것은 없는지 돌아본다. 2월 새 학기 준비를 하며 얼마나 걱정이 많았던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 년이 눈앞에 지나간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조금은 더 단단해졌을 내게, 비로소 조금 말랑해진 내게,
고생했어!
문단속 전, 빈 교실을 찍어서 우리 반 단톡방에 올렸다.
이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