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히 끄집어 내보는 그 해의 공포(3)
한 달이면 사건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한 달 후 경찰, 그로부터 세 달 후 검찰 조사 일정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연락은 깊숙한 공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수업시간 학생들을 만날 때였고, 그 외 시간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온몸이 굳어져 가는 것 같았다. 계절이 두 번이 바뀌었으니 피해자 분의 치료는 당연히 잘 마무리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보험회사에 확인 전화를 했다.
"아직도 치료를 받고 있어요. 사고 때 휴대폰도 망가져서 보상을 요구합니다."
뭐라고? 이렇게 수개월간 입원 치료를 할 정도였던가? 그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가족에게 전화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거짓임을 알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할 기운도 없었다. 검찰 측에서 피해자가 합의금을 요구한다는 연락도 받았다. 진심으로 죄송해서 어쩌지 못했던 처음의 그 마음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내 잘못에 대해 당연히 징계를 받겠다는 마음은 변함없다. 다만 이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놀랐다가 안도했다가를 반복하는 동안, 난 서서히 말도 잃고 표정도 사라지고 있었다. 11월 말쯤 교육청 공문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징계 위원회 소집 안내 공문이었다. 온 세상이 내게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 같았다. 어느덧 옥상에 올라가는 사람의 마음이 되어 있었다.
일찌감치 수업을 몰아서 하고 지정된 시간에 교육청에 도착했다. 앞 순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어느 빈 공간에서 대기를 하는데, 직원이 들어와 인사 한 마디 없이 문 앞에 앉아 있다. 감시를 하는 건가? 아, 업무 출장이 아니라 징계 대상자로 와 있는 거니까... ' 나를 위한' 징계 위원회가 열렸다. 담당 장학사님이 옆에 자리하셨고, 빙 둘러앉은 분들 앞에서 사건을 설명하셨다. 처음 겪어보는 장면, 자리 배치에 죄인이 된 느낌을 가득 받으며 질문에 짧게 답했다. 장학사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은 한껏 움츠러들다 못해 넋이 빠져있는 내게 징계를 위해 모였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뭔가를 소명할 의지도 없을 만큼 지쳐 있는 나의 모습을 되려 걱정해 주셨다. 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담당 장학사님은 따라 나오셔서 정문까지 배웅해 주셨다. 아직 결과 통보가 남아있지만, 불려 다닐 조사는 이제 다 끝난 건가? 꽤 먼 거리를 터덜 터덜 걷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있을 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린다.
" 담당 장학사입니다. 원칙상 공문으로 결과를 통보하기 전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이 너무 걱정이 되어 연락을 드립니다. 제가 잘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오늘부터는 꼭 다리 쭉 펴고 편히 주무세요. 살다 보면 더 큰 일도 많아요. 피해를 준 일은 충분히 용서를 구하셨고, 보상도 잘 되었다고 전달받았어요. 이제 다 끝났습니다. 아버님 치료 잘하시고, 힘내세요!"
폭포수처럼 줄줄 흐르는 눈물은 일 년간 말라버렸던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차가 쉴 새 없이 오가는 사거리 앞에서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