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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Feb 01. 2024

조금의 빛이라도 보여주세요.

조심히 끄집어 내보는 그 해의 공포(2)

 내가 직접 한 119 신고는 자동적으로 112까지 연결되는 모양이다. 여자분을 구급차에 보내며, 보호자가 바로 올 수 없는 상황인 듯 하니 내가 함께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구급대원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니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경찰은 신고 접수가 이상 절차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질 테니 연락이 갈 거라는 말을 남기고 모두 철수했다. 덩그러니 나만 남았다. 빈 도로에 멍하니 서 있다가 잔뜩 겁먹은 상태로 다시 차에 올라 타 시동을 걸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나도 모르게 계속 무릎을 꿇고 밤새 울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혹독한 벌을 주고 있었다.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께 죄송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치료가 되고 있는지 살피며, 보험 회사에도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면밀한 처리를 부탁드렸다.


생각보다 사건 처리 진행은 더뎠다. 앞으로 어떤 조사를 받고 어떤 징계를 받게 되는지, 절차와 시기에 대해 그 누구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았기에 시간이 갈수록 내 안의 공포의 씨앗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즈음부터는 휴대폰이 울리기만 해도 심장이 요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걱정하실 부모님께는 자세한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숙제는 아버지를 치료할 병원을 찾는 것. 며칠 밤을 새우며 검색을 하고, 문의를 하여 서울 00 대학병원에 첫 진료 예약을 했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씩 예약을 하고, 그때마다 수업 교체를 하고,연가를 냈다. 컴컴한 새벽에 출발해서 오랜 기다림 끝에 진료실에 들어가면 이것저것 검사만 할 뿐, 대면하고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더구나  나이 많은 여교수는 매우 차갑고 불친절했다. 궁금한 것에 대해 물으면 희귀병이라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검사 몇 번 해서 어떻게 아냐고 툭툭 거렸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 분야의 명의라고 하니 치료만 된다면야.라는 생각으로 봄,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오가며 버텼다. 호전이 되지 않아 지쳐버린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다시 진료실을 찾은 어느 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교수의 한 마디는 아버지와 나의 억장을 무너뜨렸다






" 뇌신경 쪽이 아닌 것 같으니 옆에 000 교수 진료실 앞에서 기다려요!"

무슨 상황인가. 왜 이 사람들은 정황을 설명해주지 않는가. 일단 다른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 젊은 교수는 오진이라 했다. 6개월간의 서울행, 우리 가족의 절실한 마음 등 그간의 서러움이 밀려와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셨다.

" 여기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젊은 교수의 대답이었다. 원인조차 알지 못하는 처음 겪는 질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들은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병원을 찾는다. 그 절박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친절하게 두려운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는 없을까? 병원을 오가며 아쉬운 부분이었다. 의사 선생님들의 따뜻한 한 마디만 있었더라도 오진에 대해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뀐 과에서 다음 진료 예약을 하라고 했지만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이 병원에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


갑상선 안병증이라 했다. 6개월간의 노력은 겨우 병명만 알아냈다. 오진으로 병만 키워 아버지는 일상생활이 힘들어졌다. 대학 병원 치료에 두 번의 큰 실망을 경험한 후로 다른 루트를 통해 갑상선 안병증 전문 한방 병원을 알게 되었다. 그곳도 서울이라 그 해가 다 갈 때까지 서울행은 계속되었다. 이곳에서는 꼭 효과가 있기를. 우리 아버지 꼭 낫게 해 주세요. 간절히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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