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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Jan 25. 2024

멘탈 붕괴 시점

조심히 끄집어 내보는 그 해의 공포(1)

 2020년 2월.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결혼 후 처음으로 아이들 없이 선배와 단둘이 여행을 계획했다. 칭따오.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우리는 중국어 전공을 한 사람들이니 숙소 예약만 해두었어도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카페가 보이면 쉬는, 그야말로 휴식을 위한 무계획 여행이었다. 발 마사지를 받으며 코로나 이야기를 들었다. 중국 현지에서도 메르스처럼 며칠 시끄럽다 잠잠해지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불과 며칠 전 출국 날과 달리 분위기가 삼엄했다. 눈뜨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포스러운 뉴스를 접하며 중국에 다녀온 소중한 추억은 왠지 비밀로 부쳐야 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잔뜩 웅크리고 있던 중 아버지의 눈에 이상이 생겼다. 평생을 설계하신 분이라 눈을 많이 쓰셔서 그런 걸까? 안구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며 눈을 위로 올리는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눈의 이상 질환이지만 뇌신경마비가 원인일 확률이 높다는 말에 우리 가족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큰 아버지가 뇌질환으로 쓰러지신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급히 모셨지만 코로나로 인해 입원 치료는 매우 까다로웠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담당 교수는 해외 출장 중이라고 했다. 스테로이드를 과하게 투입했는지 안구는 부어오르고 돌출되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동동거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병원 측에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치료는커녕 부작용이 심해지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미숙하게 검사를 진행하는 모습, 힘들게 끝낸 검사가 잘 안된 것 같다며 늦은 저녁 다시 검사실로 부를 때 아버지가 레지던트의 실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속상하고 불쾌한 마음이 솟구친다. 치료가 절실했기에 꾹 참고 있던 중 퇴원을 하라는 어이없는 연락을 받았다. 전혀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 병의 원인도 파악하지 못한 채 더 악화된 상태로 비싼 입원비를 지불하고 퇴원하게 생겼다.






 퇴원하기 이틀 전, 내 머릿속은 가히 전쟁터였다. 코로나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 모두들 집 안에서 방역에 애쓰며 지내는 중이었지만,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나는 학교와 병원과 집을 오가며 정신없이 살고 있었다. 코로나로 개학일이 미뤄지면서 수시로 바뀌는 학교 일정도 체크해야 했고,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봐야 했으며, 눈의 이상으로 보호자가 필히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병원도 자주 가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밤 9시쯤 아버지의 식사와 늦은 검사까지 마무리된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난히 새까만 밤하늘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밖에 다니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 온 세상이 적막해 이 모든 것이 꿈속인 듯했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아왔구나.'

'이제 내가 부모님과 가족들을 돌보는 진정한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구나.' 

후우. 깊게 숨을 내 쉬며 혼란스러운 모습은 감추고 씩씩한 장녀이자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짓눌리는 두려움 속에 심호흡을 하고, 내가 해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운전을 하던 중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 무슨 소리지? '

차를 세워두고 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신호가 막 바뀌는 순간 우회전을 했고, 횡단보도를 막 건너려던 행인이 놀라 뒤로 넘어진 상황이었다. 길에 주저앉아있는 여자분을 부축해서 인도로 옮긴 뒤 119에 연락을 해 도움을 요청했다. 5분도 안되어 119 구급차, 경찰차가 당도했다. 하얀 방호복으로 온몸을 싼 구급대원들이 나를 향해 달려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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