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3월은 그야말로 분주하다.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면, 눈도 입도 손도 바쁘다. 내 맞은편에 앉으시는 올해 같이 전입한 선생님의 양볼살이 더 움푹해진 것 같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선생님, 힘드시지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아직 잘 알지 못하는 그분께 실례가 될지 몰라 속으로 삼킨다.
2월, 새 학교에 전입을 하고 보니 10년 만에 구를 옮겨서 그런지 어쩜 아는 선생님이 한 분도 없었다. 인사드리러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찾아갔을 때는 눈 내리는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얼어붙어 가라앉은 마음이 한참 동안 올라오지 못했다.
건조한 통보가 쏟아졌다.
"선생님은 두 곳 겸임 가셔야 합니다. 겸임 가는 날은 화, 목요일로 하겠습니다. 수요일, 금요일은 동아리, 교직원 회의, 전학공이 있거든요. 아, 그리고 선생님은 희망 업무 안 쓰셔도 됩니다. 급식과 복지로 정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난 생활지도나 업무가 힘들지라도 안정감 있게 원적교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 곳도 아니고 두 학교라니. 그리고 그중 한 곳은 평가 체제도 완전히 다른 고등학교. 업무는 여기저기서 던져 놓은 것을 내게 떠안겨 제대로 인수인계도 받을 수 없었고, 소속 부서의 장도 갑자기 이 부서로 이 업무가 온 것이라 본인도 잘 모른다며 다른 학교로 전출 간 생면부지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마음속에서 이미 여러 번 휘청거렸지만 꿋꿋하게 잘 참아내고, 집에 와서는 아이들 밥 차려주는 일만 해내고 나면 끊임없이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자꾸 동굴 속으로 들어가 침잠했다.
어쩌겠는가.
3월이 되었고, 이만 동굴 밖으로 발을 떼어야 했다.
하루 두 명씩 급식지도를 하면, 한 달에 한번 꼴로 돌아갈 텐데, 작년 회의 결과, 하루에 여섯 명씩(한 학년에 2명씩)하기로 했단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이다. 시간표가 확정되자 선생님들의 4교시 공강인 날짜를 체크하고 엑셀 파일을 열었다. 나중에 누계는 같아지겠지만 학기 초 담임 선생님들의 바쁨을 고려해서 3월 지도 편성표를 완성해 전체 메시지를 발송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늦은 퇴근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왜 모두 이 업무를 기피하여 내게 왔는지 이해하고도 남았다.
아직 얼굴도 익히지 못한 선생님의 항의 메시지들. 이 선생님으로 인해 다른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수정하여 다시 보내드렸더니 그것도 싫으시단다. 여러 선생님들의 스케줄을 고려해서 하는 일에 어떻게 본인만의 만족을 요구할 수가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한 분, 한 분의 메시지가 올 때마다 다시 수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업무팀에 있다 보면, 선생님들의 성향과 태도, 마음 씀씀이가 보인다. 요구 사항만 늘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학교가 민원이 많습니다. 마음 단단히 하셔야 할 거예요. 전 아무 때나 배정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라는 메시지로 힘을 주는 선생님들도 있다. 마음과는 다르게, 불만을 표현하는 선생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양해해 주시는 분들께는 더 양해를 부탁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괴롭다.
개학날이 화요일이었기에, 첫날부터 겸임 학교에 출장을 갔다. 10년 만의 고등학교. 친절하게 찾아와서 인터넷, 프린터 연결을 해주는 사람도 없는 불편한 겸임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단정하게 앉아서 예쁜 눈빛을 모아주는 여고생들을 보며, 어쩌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겠는데! 한 줄기 좋은 기운을 소중하게 느껴본다.
3월 셋째 주가 되어 비로소 한숨 돌려본다.
새 학기부터 생활지도로 식사도 편히 못하는 담임 선생님들을 보며, 작년 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달 자꾸 동굴 속에서 날 짓눌렀던 그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안다. 너무 자존심이 상해 여기에만 살짝 고백해 보자면, 그때의 난, 남들이 남겨놓은 허드레 일이나 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딪치고 깨지면서 조금씩 무뎌지고 단단해지는 나를 본다. 낯선 겸임 학교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느 순간 약간의 편안함이 스친다. 학생들과 초밀착된 담임들의 모습을 거리를 두고 보며, 이 생활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에게 갈아 넣었던 마음을 수업, 전공, 내 생활에 나누어 쓰며 회복하는 해로 만드는 것도 좋겠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회복성을 발휘해 보며...
3월 셋째주 일요일 아침. 아직 잠들어있는 가족들의 아침 식사는 남편에게 맡기고, 조용한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 한가로움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