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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1

단편소설

by 차여름


1

장례식장엔 기대되는 설렘이 있다. 그들에겐 슬픔의 공간일지 몰라도, 우리들에겐 마치 신나는 놀이터와도 같아서 이곳으로 많은 혼이 모인다. 그리고 역시나 오늘도 장례식장은 놀잇감을 찾아 나선 혼들로 바글바글하다. 사람들은 우리를 귀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거 아는가? 모든 귀신도 한 때 인간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나이 들면 노인이 되듯이, 누구나 죽으면 귀신이 된다.


“오늘은 누가 죽었길래 이렇게 팔팔하고 기가 센 인간들이 많이 모인 거야?”


나는 투덜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휘- 지나다녔다. 영혼들은 너무나도 가벼워서 사람과 같은 매개체 없이는 원하는 곳으로 편하게 움직이기 어렵다. 한 곳에 오래 머물기도 하고, 지루해지면 사람도 옮겨 다니고 장소도 옮겨 다닌다. 그렇다 보니 장례식장은 기가 약해진 여러 사람이 모인 영혼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영! 어디로 갈지 정했어?”

“오랜만이네, 혁. 어디까지 다녀온 거야?”

“제대로 잡아서 오래 놀다 왔지.”


인간에게 따라붙은 영혼은 순도 100% 재미를 위하여 그렇게 한다. 영혼만이 할 수 있는 장난이 인간에게는 오싹한 공포로 느껴지기 때문에 그 반응을 보는 것이 쏠쏠하게 재미있다. 겁도 주고, 일을 꼬이게 해서 불행하게 만들면 인간에게서 부정적인 감정과 반응이 나오는데 그 반응이 정말 짜릿할 정도로 재미있다. 대표적으로는 전등을 깜빡거리게 한다던가, 갑자기 커튼을 흔들거나, 의문을 소리를 내는 장난. 조금 더 힘을 쓰면 일이 안 풀리게 한다던가, 타이밍을 틀어버려 일이 어긋나게 한다던가, 꼬이게 하는 장난이 있다. 이런 장난이 잘 통하는 사람일수록 오래 머물고 오랫동안 즐기다가 지루해질 때쯤 다른 사람을 통해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너무 오래 놀고 와서 며칠 좀 쉬려고. 영, 너는 어디 다녀왔어?”

“제대로 똥 밟아서 부랴부랴 다시 왔어.”

“뭔데? 소금? 부적?”

“아니, 팥.”

“요즘도 팥이 있다고?”

“노인네라 쉽게 생각했는데 팥이 있을 줄이야.”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장례식장은 다른 어떤 공간보다도 기가 약해져 있는 인간들이 많이 모인다. 슬픔에 가득 차 있는 인간이 많다 보니 우리 같은 영혼을 눈치챌 수도 없다. 따라붙을 인간도 잘 골라야 한다. 기껏 따라갔는데 입구에 소금이 뿌려져 있거나, 부적이 붙어있다? 그건 제대로 똥 밟았다고 할 수 있다. 소금이나 부적은 우리의 존재를 막을 순 없지만 우리의 힘을 봉인시킨다. 애완견이 있는 집에서도 우리의 존재가 금방 들통난다. 애완견 눈에는 영혼들이 보이니까. 그렇지만 인간들은 어차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자꾸 짖는 강아지가 조금 귀찮을 뿐.

똥만 밟은 정도는 괜찮다. 어버버 하다가 교회라도 가는 날엔 아주 큰일이다. 도망치면 다행인데, 그대로 소멸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개중엔 영혼으로써의 삶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교회로 가는 영혼도 있다. 인간으로 치면 자살.

그래서 영혼끼리의 언어에선 제대로 잡았거나, 똥을 밟았거나, 죽을 뻔했다고 표현을 한다. 이미 죽은 영혼인데 교회에 가게 되어 죽을 뻔했다니. 영혼들만 할 수 있는 조크가 아닐까?


“혁, 기다리다가 목 빠질 뻔!”

“나 기다리다 목 빠져서 영혼이 된 거구나? 경의 플러팅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네.”


경은 저 멀리서부터 큰 소리를 내며 우리 옆으로 잽싸게 다가왔다. 우리의 이름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잊었다. 내 이름과 얼굴을 알아야 저승을 갈 수 있다. 둘 중 하나를 모르면 저승에 갈 수가 없고, 이승을 떠돌아야 한다. 여기 있는 영혼들은 모두 자신의 살아있을 당시의 기억을 잃은 영혼들이다. 이름도, 얼굴도, 성별도. 그냥 귀신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영혼들의 이름이 한 글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이름을 모르지만 기억나는 한 글자를 지금의 이름으로 정하는 것이다. 다른 영혼들에게 자꾸 불리면서라도 잊지 않으려고. 나의 생전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어떻게든 오래 기억하려는 안간힘이다. 죽어서도 복수한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죽으면서 내 얼굴과 이름도 잊어버리는 마당에 복수 대상자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나 진짜 죽을 뻔했잖아.”

“영도 똥 밟았다던데 왜 이렇게 다들 인간 보는 눈이 없어?”

“나한테 빨리 물어봐줘. 왜 죽을 뻔했냐고.”

“너는 뭐야? 교회?”

“아니, 굿.”

“팥에다가 굿에다가 지금 몇 년도야?”


아마 이 장례식장이 시골에 있는 장례식장이라 노인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영혼 사이에서는 기가 약한 사람을 잘 잡는 것이 곧 능력이기 때문에 똥을 밟거나 죽을 뻔한 일은 다소 부끄러운 일이다. 혁과 경, 그리고 나 영은 워낙에 친한 사이여서 이런 것쯤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곤 한다. 아마 전생에도 가까이 지냈거나 친구이지 않았을까?


“오늘 장례식 첫날 아니야? 바글바글 한 것 봐.”

“그러게. 식당에 자리도 없네.”

“에이! 이렇게 조문객이 많을 거 같았으면 좀 더 큰 홀로 잡았어야지!”


구석에서 인간들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경이 화를 냈다. 식당 입구엔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는 사람들로 더욱 붐볐다.


“남의 장례식에 왜 네가 화를 내?”

“저 사람들 자리 없어서 밥도 안 먹고 그냥 가잖아!”

“그게 왜?”

“아니, 영혼들 생각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대단한 호구를 놓치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요즘 장례는 죄다 3일장인데!”


죽을 뻔했다던 경은 다음 타깃 잡기에 혈안이 되어 굉장히 예민했다. 혁은 ‘인간들이 영혼들 생각을 왜 해주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경의 예민함도 이해는 간다. 요즘은 대부분 3일장이라 인간 갈아타기 할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다.


“저번에 화장터 예약이 꽉 차서 6일장 하는 인간도 있었어.”

“아, 몰라 몰라. 전방에 호구 발견! 나 간다!”


경은 식당을 나서는 한 인간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와 혁은 경을 배웅해 준 후 식당 안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첫날이라 받아들이기 힘들겠네.”

“그러게. 인간일 때와 다른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지.”

“손님 많은 거 보니까 이승에 남진 않겠다.”


갑자기 큰 울음소리가 식당에 있는 인간들의 목소리를 덮었다. 움찔한 인간들은 힐끔 조문실을 쳐다보았다. 조문실 바닥에 엎드려 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고 있는 노인 옆에 상주로 보이는 남자가 같이 훌쩍이고 있었다. 나와 혁은 애써 무시하며 식당을 계속해서 뱅뱅 돌았다. 부러움이 빚어낸 열등감 때문이다.

이제 막 죽은 영혼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갑자기 죽어도, 오랜 투병으로 죽음이 예정되어 있어도 모두 똑같다. 그러다 3일장을 치르면서 서서히 받아들이고, 그 기간 동안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선명히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장례식장 조문실에 망자의 사진을 두는 것이다. 인간과는 달리 영혼은 기억하려고 애를 써도 기억할 수 없다. 영혼의 기억은 듣는 것으로 선명해지는데, 장례식에 온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주고, 내 얼굴(이 찍혀 있는 사진)을 쳐다봐주고, 나도 그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다 보면 생의 기억이 그나마 자국으로 남아있게 된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장례식은 흔적으로 남아있는 생의 기억을 더욱 강한 흉터로 남기는 과정인 것이다. 이 말인즉슨 내 장례식은 허울뿐이었다는 뜻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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