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여자애가 있었다. 아니, 애라고 하기엔 어른 같은데... 여자인간? 내가 이 장례식장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세 번이나 얼굴을 봤다. 많은 인간들 사이에서 저 인간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 특정 인간에게는 우울한 향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인간들은 우울한 기운이나 느낌으로 표현하지만 우리는 우울의 향을 맡기 때문에 이런 강한 향이라면 영혼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향이 강한 인간은 당연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장례식장에 여러 번 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 주기가 짧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쟤 말이야, 한 달 새에 세 번이나 봤어.”
“누구? 저기 구석에 긴 생머리?”
“응. 향도 진하지?”
“기억 못 하려야 못 할 수가 없겠네. 그렇게 마당발처럼 보이진 않는데.”
혁과 대화하는 중에도 짓궂은 영혼들은 여자애 몸을 통과하며 장난을 쳤다. 여자애한테 이미 다른 영혼의 흔적이 많은 것으로 보아 많은 혼들의 타깃이 되었던 것 같다. 장례식장 직원도 아니고 조문 온 사람인데 여길 세 번이나 온 것도, 다른 영혼들의 흔적이 많은 것도 모두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냉큼 여자애 어깨 위로 올라타니 장난치던 다른 혼들이 짜증을 내며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영, 너도 좀 더 재 보지, 벌써 걔로 정했어?”
“응. 계속 기다려봐야 더 좋은 녀석이 나타날지 장담할 수도 없고.”
“영혼의 흔적이 많은 것도 이상해.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는 거잖아.”
영혼은 인간을 지나쳐가면 흔적을 남긴다. 물론 인간은 알 수 없고 영혼들 사이에서만 보인다. 여러 영혼을 거쳐갈수록 다양한 흔적이 남는데, 한 영혼이 오래 머물면 대게 그 흔적들은 사라지고 마지막 영혼의 흔적만이 남는다. 하지만 여러 영혼의 흔적이 많다? 다들 흔적만 남기고 빠졌다고? 이렇게 향이 진한 인간인데?
여자애가 천천히 밥을 다 먹는 동안 고민 해 보았지만,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향이 강한 인간은 처음이라 궁금한 마음이 가장 컸다. 장례식장을 나서는 여자애 어깨 위에 올라서서 혁에게 인사를 하니, 혁은 공중에서 커다랗게 제비를 돌면서 배웅을 해 줬다. 향이 진한 만큼 우울의 독기가 멀리까지 풍기나 보다. 지나다니는 다른 영혼들이 모두 한 번씩은 뒤돌아보거나 힐끔거렸다. 나 제대로 잡았지? 왠지 모르게 으스대는 마음이 들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작은 원룸이었다. 여자애는 외출복을 벗지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인간을 잡은 터라 곧장 장난을 시작했다. 전등을 두어 번 깜박거렸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좀 더 빠르게 깜빡거리니 눈이 부신지 인상만 찡그릴 뿐이었다. 뭐야,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어? 창가의 커튼을 흔들었다. 창문이 열려있지도 않은데 커튼 흔들리니까 무섭지? 여자애의 텅 비어버린 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여자애 옆에 나란히 누워서 창 밖을 쳐다보았다. 구름 낀 하늘만 보였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건가?
띠링-
여자애가 벌떡 일어나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읽은 여자애는 나지막이 ‘입금 됐네.’ 하고 읊조렸다. 연달아 문자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입금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보낸 사람의 번호는 ‘조문객 알바’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아, 장례식장에 조문객 아르바이트를 다니는구나. 그래서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본 거였어. 그제야 방 안을 둘러보니 조문객 아르바이트를 다니는 여자애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오피스텔이라고 되어 있는 곳도 여기보단 넓다. 침대와 책상으로 방의 절반 이상이 꽉 차는 원룸은 희한하리만치 텅 빈 듯 짐이 없었다. 이제 막 이사를 온 것처럼 필요한 몇 개의 물건만 있었다. 부엌에도 냄비 하나, 그릇 하나, 수저 한 세트, 컵 하나. 뭐든지 하나만 있어서 수납공간은 텅텅 비어있었다. 책상 위, 침대 머리맡, 창틀, 온통 먼지투성이었다. 영혼들이 있기엔 좋은데 인간이 살기엔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일 텐데, 이러니 그렇게 우울향이 강하지.
여자애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당장 어깨에 세게 올라탔다. 왠지 모르게 어깨가 무겁고 몸이 축축 늘어지지? 더 우울하고 몸이 천근만근인 느낌이지? 여자애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양말을 벗고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가는 듯했다. 나는 재빠르게 어깨에서 내려와 책상 위로 올라갔다. 숨 쉬는 것도 귀찮아 보이는데 씻기는 또 열심히 씻나 보네. 영혼은 깨끗하고 더럽다의 개념이 없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깨끗한 것은 조금 역겨운 느낌이 든다. 인간일 때도 이랬을까? 내가 본 영혼들은 모두 깨끗한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래도 정리되지 않은 산만함 속에서 장난치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잠시 기다리니 씻고 나온 여자애가 잠옷차림으로 다시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슬쩍 다가가 팔을 세게 꼬집었다. 영혼의 힘으로는 인간에게 물리적인 고통을 가할 순 없지만 온 힘을 다해 꼬집으면 몸에 멍 하나쯤은 남길 수 있다. 어떠한 고통을 인지할 순 없겠지만 뒤늦게 멍을 발견하고는 ‘어? 이게 뭐야?’ 하고 어리둥절하는 모습을 쳐다보는 것도 생각보다 재미있다. 하지만 이 인간은 정말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 왜 이 인간에게 여러 영혼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다들 이 지루함을 얼마 견디지 못하고 옮겨 간 것이다. 장난을 치기 위해 인간에게 달라붙는데 장난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지.
“아으, 머리야...”
여자애가 머리를 움켜쥐고 일어나더니 책상 서랍에서 약을 꺼냈다. 물과 함께 약 두 알을 넘긴 후 다시 침대에 눕더니 곧장 잠이 들었다. 뭐야, 머리 아프다고 수면제 먹은 거야? 케이스를 보니 일반 두통약이다. 근데 이렇게 잠에 빨리 든다고? 내가 최근에 봐 온 젊은이들은 불 끈 방에 누워서 핸드폰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하던데, 그래서 그 시간에 장난치면 반응이 제일 핫한데. 이렇게 눕자마자 정직하게 바로 잠들어 버리는 인간은 정말 너무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 나갈까? 원룸이 모여있는 곳이라 맘만 먹으면 금방 다른 인간을 만날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하루에 한숨만 100번 넘게 쉬는 이 여자애가 너무 궁금했다. 어차피 나는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루만 더 같이 있어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