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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3

단편소설

by 차여름

3

여자애가 살짝 잠에서 깼을 때 장난이라도 치려고 가위눌림 준비도 해 보았지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얌전히 자는 바람에 나만 심심해졌다. 요란한 핸드폰 알람소리에 여자애가 인상을 쓰며 일어났고 한숨을 두어 번 쉬더니 곧장 씻고 나왔다.

옷장 문을 여니 온통 새까만 옷 밖에 없다. 얘는 결혼식 하객 알바는 절대 못하겠다. 아, 맞다. 애초에 표정부터가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이었지. 고만고만한 까만 옷을 뒤적거리더니 넉넉한 사이즈의 오버핏 티셔츠와 블랙진을 꺼냈고 옷을 입자마자 바로 집 밖을 나섰다.


여자애가 도착한 곳은 편의점.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 후 창고에 들어가 조끼를 입고 나오는 것 보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나보다. 그렇게 큰 편의점은 아니라 일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손님도 별로 없었다. 여자애는 늘 말이 없고 무표정이다.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며 중간중간 핸드폰으로 알바 사이트를 훑고 있는 걸 보니 편의점 알바로는 수입이 모자란가 보다. 왠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안 좋은 기운을 내뿜는 인간은 장례식장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영혼들이 꼬인다. 이미 이 편의점에도 몇몇 영혼들이 죽치고 있었다. 이렇게 진한 향을 가진 인간인데 지나칠 리가 없지.


“쟤는 누구야 처음 보는 녀석인데.”

“얘한테 따라붙은 혼인가 보지. 오늘 안에 나가떨어질 거야.”


편의점에 죽 치고 있던 영혼들의 대화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편의점 안을 훑기보다는 여자애 옆에 붙어있었다. 확실히 집보다는 장난칠 건덕지가 많았지만 이제는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여자애가 물건을 진열 중이다. 선반 가장 아래층에 과자를 넣고 있는데 다른 영혼이 제일 위에 있는 과자를 머리 위로 떨어뜨리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직 떨어뜨리지도 않았는데 주변에서 낄낄대는 영혼들의 소리가 거슬렸다. 과자가 떨어지려는 순간 재빠르게 막았다. 과자는 떨어지지 않았고, 앉은자리에서 일어나던 여자애가 맨 윗 칸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으로 튀어나와 있는 과자를 밀어 넣어 제자리에 정리했다. 낄낄대던 영혼들이 뭐냐며 웅성거렸지만 애써 모른척했다.

창고에서 몇 개의 과자박스를 더 뜯은 여자애는 박스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모두 뜯어 편의점 바깥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 사이 또 다른 영혼이 문에 매달려 있는 출입종의 줄을 모두 갉아놓았다. 문이 한 번만 더 열리면 끊어져 여자애 머리로 떨어지게 해 놓은 것이다. 종이 떨어지면 종이 매달려 있던 윗부분을 쳐다볼 테고, 그렇게 쳐다볼 때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으로 ‘드러내기’를 할 영혼이 준비 중이었다. ‘드러내기’는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귀신이 보이는 장난이다. 이것은 항상 보이는 것은 아니고 영혼이 드러내기를 할 때만 보인다. 그때 보이는 영혼의 모습이 기괴하거나 흉측할수록 인간은 더 큰 공포를 느낀다. 그 자체가 대단한 상처나 타격은 아니지만 이런 장난이 기대가 되는지 영혼들이 문 앞에 바글바글 모였다. 종이박스를 버리고 온 여자애가 문을 열 때 내가 안간힘을 쓰고 줄을 잡았다. 영혼은 실체가 없어 물리적 가해를 가할 순 없지만 잠깐이나마 몇 초 정도는 이 정도 힘을 쓸 수 있다. 여자애가 한 발짝 지나자마자 줄을 놓쳤다. 등 뒤로 종이 딸랑거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여자애가 뒤돌아보았다. 영혼들은 모두 숨을 죽여 여자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여자애는 떨어진 출입종을 바닥에서 주웠을 뿐 문 위를 올려다보진 않았다. 영혼들은 실망한 듯 아유를 보냈고, 드러내기를 준비하던 영혼은 나에게 와서 따졌다.


“상도덕 좀 지키죠?”

“영혼들 세계에 상도덕이 어디 있어요?”

“당신도 똑같이 장난치려고 들러붙었으면서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너무 구닥다리 장난이라 오글거려서 봐줄 수가 없어서요. 요즘 누가 드러내기를 해요? 그러면 소문만 잔뜩 돌아서 오히려 손님도 안 오고 알바도 안 온다고요.”


나한테 따지던 영혼은 맞는 말이라고 수긍이라도 하는지 눈 깜짝할 새에 매대 뒤편으로 사라졌다. 사실 그런 생각으로 장난을 막은 건 아니다. 매일매일 어딜 가든지 이런 영혼들한테 시달리면서도 모르고 있을 저 인간이 너무 안쓰러워서 막아주고 싶었다. 나, 사실 전생에 마더테레사 같은 위인이 아니었을까?

자기 만족감에 빠져 있을 찰나, 이번에는 포스기가 눈에 띄었다. 영혼들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보는데 그중 하나가 통신망이다. 이유 없는 통신오류나 스피커의 하울링 같은 건 모두 영혼들이 선을 타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포스기의 통신망이 불통인 것이 눈에 보여 선을 따라가 보니 역시나 통신망을 꼬아내고 있는 영혼이 있었다. 어차피 완전한 고장을 낼 수는 없고 시간이 지나면 풀리긴 하지만, 이러다 손님이라도 오면 여자애는 곤란한 상황을 겪을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장난을 치는 거지? 영혼들의 장난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을 텐데 저 여자애는 그럼 일을 그만두거나, 이직할 생각을 해야지 왜 계속 여기서 당하고만 있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불통이 된 선을 계속해서 풀었다. 여자애는 포스기가 불통이 된 사실도 모르고 여전히 알바 사이트만 뒤지고 있었다.


“아,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너 뭐야?”

“딱 보면 몰라요? 귀신이잖아요.”

“근데 왜 자꾸 우릴 방해하냐고.”

“얘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얘는 맨날 이지경으로 당했을 텐데 같은 장난 지겹지도 않아요?”

“네가 뭔데 얘 편을 드냐고. 그럴 거 같으면 다른 곳 가서 수호천사나 하세요~”


내 주변으로 여러 영혼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어차피 영혼들은 말싸움 밖에 못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겁나진 않지만 내 의견이 쉽게 통할 것 같지 않아서 막막했다. 어떻게 설득해야 하지?


“여기가 장난칠 것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와서 재밌단 말이에요.”

“이 우울의 향, 맡으셨죠? 이 인간만큼 센 인간을 본 적이 없어요.”

“얘가 주는 부정적 기운에 매일 힘이 펄펄 난다고요~”


영혼들의 말이 다 맞다. 반박할 말이 없다. 우리는 애초에 천사처럼 누굴 돕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내 모습은 영혼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이상할 것이다. 나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우울의 향이 진하다 못해 독 할 지경이라 계속 맡다 보니 이 인간의 감정에 동화되어 버린 걸까? 영혼들에게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옆에서 이 인간을 도와줄 거예요. 나랑 계속 부딪히던가 다른 인간 찾으세요.’ 하고는 여자애 어깨에 올라탔다. 여자애는 어깨가 무거운지 한껏 더 움츠리고 한숨을 쉬었다. 궁시렁 궁시렁 욕하면서 떠나는 영혼도 있고, 남아있는 영혼도 있었다. 내가 얼마나 같이 있을 줄은 모르겠다. 나도 지겨우면 이 인간을 떠나겠지. 그렇지만 일단 지금은 안쓰러운 마음이 커서 며칠 더 같이 있고 싶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떠돌이 영혼들이 장난을 치고 건드렸다. 영혼들이 속눈썹을 뽑아 눈알에 집어넣어도 그냥 조용히 눈을 비벼 빼내었다. 여러 영혼이 힘을 모아 휘청이게 만들어 지나가던 자전거와 부딪힐 뻔 한 바람에 자전거 탄 아저씨가 욕을 했지만 여자애는 꾸벅 인사를 한 후 말없이 집을 향해 걸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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