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의 디자인이 내 손에 닿기까지
지난 여름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브랜드를 살리는 패키지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강의와 멘토링을 시작한 것이다. 강의 자료를 준비하며 외장하드를 뒤적이다가 내가 처음 패키지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그야말로 우당탕탕했던 시간을 발견했다.
지금도 발주 직전에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약 10년 전 내 방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화면 속에서 괜찮아 보이는 디자인을 실제 출력하면 전개도가 맞지 않아 조립이 안 되거나, 의도한 색감이 아니어서 좌절했던 수많은 순간들. 시간과 돈을 퍼부었던 시행착오와 한가득 버려진 출력물을 디딤돌 삼아 지금까지 독립해서 먹고 사는 거다.
처음 강의와 멘토링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망설였지만 제작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다. 내가 겪었던 그 시행착오의 시간을 다른 디자이너들이 조금이라도 줄였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예쁜 포장을 넘어 브랜드의 경험과 지속성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관점을 나누고 싶었다.
흔히 패키지 디자인이라고 하면 상자를 예쁘게 꾸미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무에서 내가 정의하는 패키지 디자이너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단순히 그래픽을 입히는 패키지 디자이너에 머물렀다면, 요즘에는 패키지를 다루는 BX(Brand Experience)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패키지는 브랜드의 시각 정체성(Visual Identity)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매체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고 박스를 여는 그 순간, 즉 언박싱(Unboxing) 과정 전체가 브랜드가 고객에게 건네는 첫 번째 인사이자 가장 강력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결국 패키지 디자인은 2D의 그래픽을 3D의 물성으로 구현하여, 손에 잡히는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 강의에서 단순히 예쁜 상자를 만드는 법이 아니라, 브랜드의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패키지라는 매체로 해결하는 기획의 논리를 강조하고 싶었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에게 디자인은 감성의 영역인 동시에 철저한 이성의 영역이다. 직관적으로 '좋다'라고 느껴지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뒤를 받치는 탄탄한 논리가 필요하다.
패키지 디자인 실무도 마찬가지다. 마케팅팀, 영업팀, 그리고 제작사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가 '설득하는 기획서 마스터'가 되어야 한다. 왜 이 소재를 써야 하는지, 왜 이 구조가 적합한지, 제작비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 디자이너가 먼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클라이언트와 팀을 설득할 수 있다.
커리큘럼을 짜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도 바로 이 '실무의 프로세스'다. 기획서 작성부터 디자인 실습, 그리고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인쇄 감리와 제작 발주까지. 혼자서도 문제없이 발주 서류를 작성하고, 내 디자인이 모니터를 넘어 실제 제품으로 탄생하는 순간을 수강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디자이너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화면 밖으로 나와 낯선 영역으로 확장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내게 그 용기는 평면의 디자인을 입체의 세계로 끌어내는 시도였다.
브랜드와 제품이 돋보이는 지기구조를 구성하고, 종이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며, 인쇄소의 잉크 냄새 속에서 내 디자인의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릴지 고민하던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브랜드의 경험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로 한 단계 레벨업 할 수 있었다.
이번 강의가 패키지 디자인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분들, 혹은 자신의 디자인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유효한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한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당신의 디자인이 세상 밖으로 나와 누군가의 손에 닿는 기쁨, 그 밀도 높은 경험을 함께 하실래요?
브랜드를 살리는 패키지 디자인 4기(1.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