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인쇄물 기반의 그래픽 디자인을 시작했다. 신입 디자이너로 2년 6개월을 보낸 후 휴식과 짧은 프리랜서 시기를 거쳐 현재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4년차가 되는 동안 업무의 특성과 환경이 바뀌면서 나만의 일하는 방식을 조금씩 갖추게 되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골조를 이루는 ‘일하는 태도’에 대해 적어 보고 싶다. 이 부분은 실무를 처음 접했던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가장 크게 배웠다. 프로젝트마다 집중해야 할 부분이 조금씩 달랐지만 다음 세 가지는 늘 잊지 않고 염두해야 할 필요가 있다.
* 디자인 에이전시: 개인 또는 기업에서 의뢰받은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회사. ‘디자인 스튜디오’로 부르기도 한다.
*인하우스 디자이너: 기업 소속 디자이너로 사내 디자인 업무를 진행한다. 필요에 따라 디자인 에이전시에 일을 의뢰한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조사부터,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디자인 시안으로 만들기까지 신입 디자이너에게 모든 과정은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나는 손이 빠르지 않은 신입이었기 때문에 자료 조사와 아이디어 정리를 겨우 끝내도, 시안을 만드는 건 또다른 문제였다. 이 방향이 맞나? 이렇게 진행해도 무리가 없나? 나는 신입이기에 작업의 진행과 수정 방향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그래도 디자이너라면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건 디자인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대담하게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다만 초기 단계에는 방향성을 여러 갈래로 두고 ‘넓고 얕은’ 시안을 작업했다. 프로젝트가 한 그루의 나무라면, 줄기가 잘 뻗어나갈 수 있도록 여러 갈래의 뿌리를 심는 것이다.
홍보물 디자인이라면 키 비주얼(Key Visual)이 되는 그래픽 요소부터 고민하고 스케치했다. 최종적으로는 여러 개의 판형에 변형이 필요하더라도, 키 비주얼을 잡아가는 단계에서는 하나의 판형에 적용해 다수의 시안을 비교했다.
잘하고 싶고, 빨리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에 하나의 시안을 완벽하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작업해서 공유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디자인이 수정 없이 최종 결과물로 이어질 거라는 확신은 위험하다. 시안을 개선하면서 전체 방향성이 바뀌거나 자료 조사부터 다시 해야 할 수 있다. 컨펌하는 사람이 나의 의도와 작업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빠르게 큰 그림을 그리는 대담함이 필요했다.
‘신입 디자이너의 실수 모음집’을 따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작은 실수가 많았다. 자주 실수하는 부분은 업무 파일을 다루는 일이었다. 중간 과정의 파일을 열어 마무리하다가 같은 파일에 덮어쓰거나, 디자인 파일 안에 연결된 사진 파일의 경로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거나, 디자인 소스를 수정 불가능한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 주로 했던 실수였다.
이런 실수는 대개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빠르게 작업하다가 놓치는 부분이니 하나씩 점검하며 진행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했다. 어제 하던 작업을 오늘 이어서 할 때는 꼭 파일을 복사해서 제목의 날짜를 바꾼 후 시작했다. 파일 경로는 잊지 않고 바로 연결해두거나 임시 폴더를 만들어 작업한 후 완성 단계에서 정리했다. 언제든 수정이 가능한 디자인 소스를 위해 번거롭더라도 제대로 저장하는 습관을 들였다.
신입 디자이너는 프로젝트의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할 경험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수가 어디서 생길지 모른다. 실수에 대한 위험도를 낮추고 대비해야 한다.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 실수를 신입일 때 반복했던 이유는 하나를 생각할 때 둘, 셋까지 헤아려 보는 신중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처 방법을 찾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이전 실수를 떠올리며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실수는 경험이라는 이름이 된다.
결과물이 더 좋아 보이는 ‘방법’은 디자인 경력에 상관없이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다.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을 위해서는 집요한 태도가 필요함을 신입일 때 배웠다. 이때의 집요함이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빠뜨린 수정사항을 점검하는 ‘끈기’와 더불어 한 끗 차이로 결과물이 개선되는 지점을 찾는 ‘센스’를 겸비하는 것이다. ‘끈기와 센스’ 모두 스스로 발휘하기 힘든 부분이라 나는 디자인 컨펌 과정에서 이 요소를 체득할 수 있었다.
인쇄물은 제작 공정에 들어가면 디자인을 수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종 파일을 전달하기 전에 챙겨야 한다. 그런데 작업자인 내가 보지 못했던 수정사항이 컨펌 과정에서 타인에게는 쉽게 발견되는 일이 많다. 내가 발견하려면 모니터로 보면서 확인하고, 출력해서 다시 확인한 후 중요도 순으로 계속해서 확인하는 끈기를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결과물이 개선되는 지점은 디자인의 큰 구조뿐 아니라 작은 요소를 바꾸는 것도 해당한다. 목업(Mock-up) 파일을 프로젝트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교체하거나, 숫자가 중요한 디자인이라면 숫자 폰트를 신경 써서 골랐다. 전체 결과물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요소일지라도 ‘한 끗’ 차이는 집요하게 고민한 만큼 다른 결과를 만들었다. 나는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고 컨펌을 받으면서 이 지점을 파악하고 반영하는 ‘센스’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신입 디자이너도 경력이 쌓이면 혼자서 판단하고 진행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후임 디자이너를 돕고 이끄는 관리자가 되기도 한다. 신입일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 챙기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알아볼 줄 아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신입 이름표를 뗀다고 해서 위의 세 가지 태도가 습관처럼 몸에서 베어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업무 집중을 방해하는 외부 환경(빠듯한 일정, 잦은 수정 요청 등)으로 인해 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경험으로 배운 기본적인 태도를 지침으로 두고 되돌아보는 것은 적당한 긴장감을 주고 업무의 효율을 높인다고 믿는다. 이 부분은 단지 디자이너로서의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닌, 일을 잘 해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하고자 하는 나 자신을 위함이기도 하다.
교정 및 교열: 김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