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는 방송에서 그 날 읽을 책과 작가에 대한 간략한 설명 후 책의 일부분을 읽어 준다. '책을 읽어준다'라고 하면 어쩐지 엄마가 아이에게 읽어주는, 대화체가 나오면 그 인물에 몰입하여 생생하게 읽는 음성이 예상된다. 하지만 작가는 대화체든, 묘사하는 장면이든 시종일관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로 담담하게 읽는다. 그럼에도,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일까,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책 내용이 그대로 내 귀에 쏙쏙 꽂히는 느낌이다.
이번에 읽은 책도 김영하 작가의 담담한 목소리로 능청스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 빌려서 읽었다. '원주 통신'이라는 제목의,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와(만난 적은 없지만) 관련된 일화가 담긴 이기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실린 소설집이다. 그저 틀어놓고 내 할 일을 하고 있어도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 나를 앞에 앉혀두고 이야기를 해 주는 듯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끝까지 읽어주진 않았고, 뒷부분은 김영하 작가의 설명으로 마무리되었다. 모든 책 내용을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어떤 책은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내가 뭘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더 관심이 가서 책을 빌려서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책으로 읽으니 김영하 작가가 읽어주지 않았던 뒷부분에서 그 짠함이 극대화되었다. 왜 이렇게도 '웃픈' 클라이맥스 부분을 읽어주지 않았을까. 직접 읽고 그 재미를 느껴보라는 깊은 뜻이었을까.
그 외에도 국기게양대와 사랑에 빠진 인물, 흙을 먹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 같은 특이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있고, 상대방에게 읽어줘야만 하는 '나쁜 소설', 자신이 소설가임을 입증하기 위해 불가능할 것 같은 흙벽을 깨부숴 보이는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 작가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글 같은 '소설' 자체에 대한 이야기 들이 실려있다.
책이 두꺼워서 언제 다 읽나 했는데 325페이지 밖에 안되었다. 세월의 흔적 탓에 한장한장이 두꺼워진 것이었다.
저자는 '원주 통신'에서 대학 졸업 후 방바닥과 혼연일체가 된 백수 시절, 책장에 꽂혀있던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말할 상대가 없으니 책을 크게 소리 내어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밤을 새우는 날도 있었단다. 김영하 작가도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본인도 소설가가 되기 전 습작하던 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습작한 것을 읽어주곤 했다며 그걸 들어준 친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소설이라는 것이 활자로 된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겠지만, 전래동화는 구전으로 이어져 내려왔고, 부모들도 어린아이에게 목소리로 이야기를 읽어준다. 나도 요즘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의 즐거움을 이렇게 깨닫는다. 당분간은 듣는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세상을 또 알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