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퇴근 후 붓글씨를 쓰러 다닌 지도 꼭 5년이 되었다. 서예를 취미로 한다고 하면 대개는 나를 매우 특이한 사람을 보듯 쳐다본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 이외에는 붓을 잡아본 적이 없을 테니 그 심정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나는 어릴 때 남들이 미술 시간에 붓글씨를 쓴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타의에 의해 억지로 했었지만, 기억이란 미화되기 마련이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붓을 잡게 된 것이다.
서예 교실 문을 들어서면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교실에 있는 모두에게 눈인사까지 건넨다.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들 열중해서 글씨를 쓰는데 방해될까 봐 인사 없이 교실에 들어가 빈자리에 쏙 앉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구도 그 인사를 방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글씨를 쓰는 사람들에게 내 안부를 전하고 그들도 일주일간 안녕하셨는지를 물으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주고받는 것이다.
인사를 한 뒤 서예도구들을 챙겨 와서 본격적으로 글씨를 쓸 준비를 시작한다. 어릴 때는 물을 부어 먹을 갈아서 썼지만, 시간이 금인 직장인에게 그럴 여유는 없다. 먹 가는 기계도 파는 모양인데, 그 기계의 존재를 안 날에 뒤에 앉은 사람에게 “먹 가는 기계를 선물해 주는 사람이 오늘부터 내 이상형이에요”라고 실없는 농담을 건네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먹 가는 기계가 없으니 벼루에 방부제가 가득 들은 먹물을 오늘 쓸 만큼 쏟아붓는다. 이따금 전시회나 서예대전에 출품할 작품을 쓸 때는 비싼 먹물을 사는 요행을 부리기도 한다. 종이마저 비싼 것으로 사는데, 확실히 붓놀림이 다르고 써지는 글자의 테가 다르다며 감탄하면서 쓴다. 아마도 비싼 종이와 먹물을 낭비할 수 없다는 마음에 한 획마다 신중을 기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나도 모르게 운동이든 서예든 ‘장비빨’이라며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회사에 감사의 마음을 다지게 된다.
비싼 종이와 먹물의 힘으로 전시회 출품!
먹물에 붓을 충분히 적신 뒤 지난주에 선생님께 받은 체본을 보며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한 획 한 획 내려 긋는다. 선생님은 이런저런 말씀도 하면서 쓰지만 나는 붓을 잡고 있는 동안은 글씨만 쓸 수밖에 없다. 한문을 쓸 때는 서서 허리를 굽힌 채로, 한글을 쓸 때는 앉아서 어깨를 수그린 채 종이 한 장에 써야 할 글자를 모두 쓰고서야 고개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아닌데도 다 끝나고 집에 가면 배가 너무 고프고 피곤해서 얼른 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괜한 게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서예만 하는 게 지겨워서 다른 요일에 캘리그라피를 배우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그 교실에서는 사람들이 한 글자 쓰고 글씨가 어쩌니 저쩌니 말이 많아서 도대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미 낸 재료비는 그냥 버리고 남은 수업료만 환불받고 그만뒀었다. 나는 글씨 쓰는 것 자체보다도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내 손으로 눈 앞에 있는 것에만 가만히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을 더욱 원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월요일마다 누가 봐도 서예 도구가 들었다고 알 수 있는 가방을 들고 출퇴근을 하니 자연스레 회사 팀원들도 내가 서예를 하는 것을 더 이상 신기해하지 않는다. 회식이나 약속을 잡을 때도 월요일을 제의하면 머뭇거리거나 거절해 온 게 오래되다 보니 요즘은 당연히 모든 일정에서 월요일은 제외된다. 혹시나 이 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사람이 월요일 퇴근 후에 식사 제의를 하면 “하대리 월요일은 안돼요”라고 주변에서 먼저 말씀해 주신다. 월요일 퇴근 후에는 나를 찾지 마시라. 회사에서도, 서예 교실에서도.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