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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토너 Jun 15. 2019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까

언제나 먹먹하게 하는 그 이름, 엄마

“4시 차 탔다”

지난주 토요일, 별안간 엄마로부터 카톡이 왔다. 나는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엄마에게 왜 말도 없이 왔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엄마는 1주일째 시름시름 앓는 동생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연락할 새도 없이 급하게 왔다고 했다. 내가 애지중지 하던 접시를 깨 먹은 동생과는 며칠째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 맞나’ 하고는 방으로 쏙 들어갔다.

엄마는 일요일에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고 카페에 간 것 외에는 서울에서 머무르는 이틀 남짓 내내 집에서 밥을 하고 청소를 했다. 덕분에 일요일 점심에는 인삼밥, 낙지볶음, 장어구이 등의 보양식을 든든하게 먹었고, 저녁에는 잘 굽혀서 씹는 식감이 좋았던 ‘남해산 한우’를 먹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고소한 전복죽과 과일을 먹고 출근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현관문을 열 때마다 정리정돈되어있는 방을 맞이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냉장고에 만든 지 오래되지 않은 음식들이 차곡차곡 채워져 있어서 마음도 든든하다.


월요일 점심에는 엄마에게 회사 근처로 오라고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명동교자에 가서 칼국수를 시켰다. “엄마, 여기가 명동에서 제일 유명한 집이다. 이 근처에도 가게가 이만한 게 두 개가 더 있고 줄도 엄청나게 선다”며 짐짓 대단한 곳에 데리고 온 양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는 그러냐며 웃고는 칼국수를 후루룩 먹었다.

“엄마, 안 씹어 먹는 거 아니가?”
“어, 너무 피곤해서 씹을 힘이 없다”

엄마는 요즘 부쩍 편찮으신 외할머니의 간호를 수시로 하러 가고, 최근에 하산하다가 발목을 접질려 깁스를 하고 있는 아빠도 돌봐야 한다. 도시에 나가 사는 형제자매들의 군소리도 고스란히 듣는다. 그 와중에 탁구도 치러 다니고, 가죽공예와 바느질도 하러 다닌다. 평생 일을 하다가 그만둔 지도 2년이 지났지만, 엄마가 하루라도 마음 편히 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디 놀러 가더라도 항상 엄마를 찾는 사람들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과 나라도 같이 살았으면 그 수고로움을 덜어줄 수가 있었을까? 아마도 자식 뒤치다꺼리까지 하느라 더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번씩 자식들 사는 집에 올라와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힘들게 청소하고 밥하고 가니 만성 피로가 쌓일 수밖에. 그런 엄마에게 밥을 빨리 먹지 말라고 타박이나 하고 앉아 있는 딸이었다.


칼국수를 다 먹고는 명동 성당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명동 성당으로 오르는 길 왼쪽을 보면 기도를 할 수 있는 수녀상이 있다. 엄마는 독실한 불교 신자답게, 다른 종교의 기도 형태에도 관심을 보이며 수녀상을 한참 보더니 기도를 했다. 수녀상 뒤로 보이는 명동성당 탑을 보더니  “이건 일부러 이렇게 해놨겠지?” 라며 내 동의를 구했고, 주위에 심겨있는 꽃을 보고도 “아지매들은 이런 꽃 사진을 대문 사진으로 많이 해놓는데 나는 절대 안 찍는다” 며 소녀처럼 보이는 것 하나하나마다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언덕을 올라 명동 성당 내부에도 들어가 봤다. 신자석에 나란히 앉아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옆에서 눈을 감고 기도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저 작은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나는 그것밖에 빌 수 없었다.

터미널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엄마는 나에게 시간 있으면 동대문에 가서 퀼트 천을 사다 놓아주라고 했다. 나는 거기에다가 그냥 알겠다고 하면 될 것을 “엄마가 서울 올라왔을 때 좀 가서 사라. 내가 보면 뭘 안다고” 라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엄마는 요새는 키트 같은 것도 있다며 겸연쩍게 대답했다. 회사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개찰구까지 바래다주지 못하고 가야 했다. 저 끝까지 가서 3호선 타면 된다고 말하고 헤어지려는데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또 어깨를 감싸 안고는 한참을 나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버스를 타기 전에 피곤하다는 카톡 하나 남겨놓고 집에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한참 연락이 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동생이 밤늦게서야 엄마와 연락이 되었다고 했다. 집에 가서도 아빠 밥을 차려주고 외할머니에게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직접 전화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다행이네 하곤 내 할 일을 했다.

“오늘 국수도 좋았고 니랑 같이 걷는 길도 좋았다
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는데 그냥 눈물이 나더라
내가 쪼매 늙어서 감정이 여려졌어.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 누구보다도”

자정이 넘어서 온 카톡에 목이 멨다. 뭐라고 답장을 할지 몰라 메시지를 읽고 또 읽을수록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고서야 겨우 한 문장을 보낼 뿐이었다.

“우리 엄마 감성적이네. 다음에는 동대문에 천 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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