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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토너 Jun 23. 2019

해봐야 알 수 있는 것

2박 3일 승진자격 연수 후기

3일간의 승진 자격 연수를 다녀왔다. 정식 명칭은 ‘고급행원 업무연수’로, 줄여서 ‘고행’이라고도 한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괴로운 일을 수행한다는 뜻의 고행과도 상통한다. 그만큼  괴로운 과정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연수는 입소 전에 공부한 것으로 첫째 날에 시험을 치고, 연수 내내 토론하고 수업들은 내용으로 마지막 날에 시험을 치르게 되어있다. 문제는 은행 실무 과목들이라 나같이 전산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영업점에서 근무 하는 사람과는 아예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같은 본부의 선배들 중 이 연수를 들어가기 위해서 휴가를 내고 공부를 했다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이 연수가 어느 정도의 ‘고행’인지 와 닿지가 않아서 “아니 그런 휴가를 왜…?” 라고 되물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여러 명에게서 듣다 보니 정말로 겁이 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범위는 어느 정도로 봐야 할 지, 문제는 어떤 식으로 나올지와 같은 방향성이 전혀 잡히지 않아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막판 일주일 동안은 집에서 틈만 나면 동생에게 “괴로워”를 연발했다. 동생이 언니는 세상 편하게 사는 것 같았는데 최근 본 중에 제일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연수 날이 다가왔다.


수업이 끝나고 시작된 본격 자율학습

잊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재회

시험을 치르고 한숨을 돌리면서 강의실을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신입 때 영업점에 배치 받고 창구에 앉아서 어리바리 하고 있을 때 옆 옆자리에서 많이 도와주셨던 대리님이었다. 영업점 나오고 처음 봤으니 무려 5년 반만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나에게 하신 마지막 질문이 "결혼했니?" 였다. 이런 질문은 참 오랜만에 받아봤다. 아직 어리니까 즐기라고 하시기에, 이제는 안 어리지만 알겠다고 했다. 3년 전에 영업점에서 우리 부서로 3개월 정도 파견 나왔던 대리님도 마주쳤다. 두 손 붙잡고 잘 있었냐고 안부를 주고 받았다. 이분도 같은 질문을 하시기에 1년에 겨우 한두번 만나는 친척들 만나는 느낌이 잠깐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 지나서 만나도 반갑게 인사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수다의 향연

나는 남초 비율의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일 얘기를 하거나 전화 응대를 하는 것 외에는 말 할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영업점에는 언니들이 많다. 그 언니들이 이번에 많이 왔다. 6명씩 18조가 있으면 그 조에 1명씩만 남자고 나머지는 다 여자인 꼴이었다. 한 언니는 우리 조에 있던 남자 직원에게 신화의 앤디를 닮았다며 한껏 띄우고는 그러니 이제 이 문제의 답을 알려달라고 채근했다. 내 글씨를 보고는 어째서 이렇게 작고 반듯하게 쓸 수 있는지를 나름대로 분석하는 언니도 있었다. 영업점에 있었을 때 객장에 손님이 없거나 셔터가 내려가면 터져 나오던 수다의 향연이 떠올랐다.


해보기 전에 알 수 없는 것들

연수에 들어가기 직전 한 주는 퇴근하면 도서관으로 직행했고, 휴일에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그래 봤자 달랑 일주일이어서 이미 다녀온 분들의 기준에서는 "그걸로 돼?"의 수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몸은 몸대로 힘들고 공부할수록 시험과 토론식 수업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연수에 들어가니 공부해 놓은 게 있어서인지 수업을 따라가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토론 할 때도 어떤 문제를 두고는 실무도 안 해본 내가 실무자에게 의견을 적극 피력하기도 했다. 해보면 별 거 아닌데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니, 막연하게 두려웠던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론과 수업으로 하루를 보낸 뒤,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 새벽까지 공부했다. 실로 오랜만에 치열하게 공부했다. 고득점을 받을 필요도 없고 통과만 하면 되는 시험이지만, 떨어지면 다시 이 과정을 해야 한다는 게 싫어서 이를 악물고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날 마주한 시험지는 생각보다 쉽게 나와서 탈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풀고 나왔다. 지금 관련 업무 자격증 시험을 봐도 붙을 것 같다는 자만마저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시험이 11월이라 그때까지는 다 잊고도 남을 것 같아서 내 손으로 시험 접수하고 자발적으로 괴로워할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출근해서 나에게 기출 자료와 동시에 겁까지 잔뜩 줬던 선배에게 메신저로 연수 후기를 들려줬다. 신나게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마지막에 고생했으니 이제 푹 쉬라고 하시길래 “맞아요 저 너무 고생했어요, 저 이제 당분간 막 살 거예요” 라고 방탕하게 살 것처럼 당돌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막상 뭘 해야 막 산다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분하지만 막 사는 법까지 고민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을 막 산다고도 할 수 있다면 당분간은 그렇게 지내야겠다.



메뉴는 많았는데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연수원 밥. 기분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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