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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토너 Mar 16. 2019

나의 달리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내가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로 달리기를 처음 접한 것은 7년 전 한 스포츠 브랜드의 7km 마라톤 대회였다. 참가비 5만원을 내면 기념티와 러닝화를 주고 끝나면 축하 공연까지 있다는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 걷뛰걷뛰의 결과로 7km를 뛰는데 걸린 시간은 52분. 그동안 사들인 러닝화에 밀려 그 러닝화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달리기를 제안한 그 친구는 지금 내가 달리기의 ㄷ자만 꺼내도 내가 언제 그런 제안을 했느냐는 듯, 모르쇠로 일관한다.


힘들게 완주했지만 대회 참가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나는 그 해에 10km 대회를 몇 번 더 신청해서 나갔다. 이직 준비용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저는 마라톤을 좋아합니다.'로 시작해 달릴 때의 '러너스 하이'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즐겁기도 하고 이렇게 써먹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10km만 뛰고 마라톤을 운운하던 나는 덕분인지 이직에 성공했다. 신입사원 연수 때 UCC를 만들어야 해서 '마라톤을 뛰는 정신으로 회사생활을 하자'는 주제로 만들자고 제안해봤는데 한방에 조원들에게 먹혔다. 그렇게 패기 넘치는 8명의 연수생은 하프코스를 뛰기 위해 한여름에 연수원 운동장을 자발적으로 돌았다.


우리가 참가한 대회는 거의 매주 도림천에서 열리는 소규모의 대회로 기록 측정용 칩도 없었다. 때는 8월 중순이었다. 그 한여름 아침에 좁은 주로의 도림천을 8명이 헉헉대고 중간에 서서 쉬기도 하며 겨우 완주했다. 기록은 2시간 51분. 그래도 하프코스를 뛰다니, 10킬로를 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에 너무나 기뻤다. 그때 같이 뛰었던 동기 7명 역시 아직도 달리기를 계속하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긴 하지만 말이다.


하프코스를 완주했다는 자신감으로 그 이후로도 대회는 하프코스 위주로 신청해서 나갔다. 다음 해 10월, 사내 동호회와 연이 닿아 동호회 소속으로 강남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걸 계기로 회사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주요 대회는 회사 단체접수로 참가하고 있다.


7km 마라톤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지 7년째다. 그동안 수많은 10km, 하프코스 대회를 뛰었고 풀코스도 7번 완주했다(내일이면 8번이 되겠다). 완주메달은 언젠가부터 봉지도 뜯지 않은 채 방구석 어딘가에 쌓아두고만 있다. 사람들과 같이 대회에 나가기도 했고 혼자 나가서 뛴 뒤 쓸쓸히 돌아오기도 했다. 동호회에 가입해서 좋은 기록을 내겠다며 거의 매주 대회를 나간 적도 있다. 해외여행을 가면 아침에 뛰면서 동네를 조용히 발로 느끼고 눈에 천천히 풍경을 담는 습관도 생겼다. 주말 아침에 날씨가 좋으면 러닝복을 챙겨 입고 남산 북측순환로를 뛰러 나간다.


앞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여러 사람과 혹은 혼자 뛰면서 있었던 일과 들었던 생각들을 써 볼 생각이다. 7년 동안 별 생각 없이 달려온 줄 줄 알았는데 달리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내가 되어있었을 것 같다. 내 인생을 후달리지 않고 내 의지로 달릴 수 있게 한 건 바로 '달리기' 덕분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아닌 일도 글로 쓰면 아무 일이 된다고 하는데 나름 아무 일인데 그동안 쓰지 않고 뭘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 일을 근사하게 펼쳐놓으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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