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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토너 Mar 20. 2019

적당한 거리를 둔다

같이 달리기 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내가 달리기를 한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보기도 하고 흥미롭다며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데리고 가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후자였다. "혼자 뛰지 말고 같이 한번 나가요"라는 말을 별생각 없이 했을 것이다. 회사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네 다음에요~" 하면서 넘겨버렸었다. 하지만 이들은 내 옆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하지만 각자 소속된 회사가 달랐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조금 더 편하게 사적으로 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적당한 10km 대회를 찾아내어 단체접수를 진행했다. 우리의 업무명 세 글자와 오남매를 합쳐서 "XXX 오남매"라고 내 마음대로 단체명을 지어서 접수했다.


대회날은 2015년 9월,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우리는 대회티를 입고 출발 직전까지 뭐가 그리 좋았던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우리 다섯 명 중 가장 연장자였던 멤버 J는 이런 대회 때마다 여자 친구의 속도에 맞춰 뛰느라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다며 전력으로 달릴 것을 예고했다. 나 역시 하프코스 경험자라며 열심히 뛰겠노라 큰소리쳤고, 두 번째 연장자이자 등산 마니아인 H도 지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나머지 둘만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침임에도 출발 전부터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암동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도는 코스로 주변에 그늘도 하나 없었다. 땡볕을 달리려니 평소보다 조금 더 버겁게 느껴져서 무리하지 말자고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런데 5km 지점에서 반환하고 마주오는 주자들을 보는데 거의 정신줄을 놓고 뛰는듯한 J가 보였다. 괜찮으려나 걱정을 잠시 했지만 더위에 지친 나는 곧 그를 잊고 내 레이스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겨우 한 시간 안에 골인을 했는데, 세 번째 연장자인 S로부터 연락이 왔다. J가 쓰러져서 응급차에 실려갔단다. 마라톤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르는 사람들의 뉴스를 본 적이 있었기에 설마 그런 건가 싶어서 너무 걱정이 되었다. 병원에 따라간 S는 그냥 더위 먹은 것이라고 걱정 말라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대회가 끝나고 근처 삼겹살집에서 낮술로 신나게 달리자는 우리의 계획은 차치하고서라도, 달리기 하다가 구급차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너무 걱정도 되었지만 웃기기도 했다. 그 사건은 주변 동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두고두고 회자되어 아직까지 그에게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그 후로 우리는 3년 가까이 다음 대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동안 일 년에 두 번 꼴로 만나서 술은 엄청나게 마셨다. 나와 같은 업무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나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제각각 자신들의 일을 찾아 떠났다. 막내 A는 결혼을 했고, 구급차에 실려갔었던 J는 마라톤 대회에 함께 나가곤 했다던 연인과 헤어졌다. 연장자 H는 등산 모임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되어있는 것 같았다. J를 응급차에 태우고 갔던 S는 달리기 이야기 조차 하는 것이 싫은지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들다. 우리는 다들 나이가 다르지만 모두 서로에게 존대를 한다. 2년 남짓 같은 일을 하면서 하루 종일 같이 있었기에 서로 충분히 가까워졌지만,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간에 예의를 지킨 탓일까. 그래서 만날 때 더 부담이 없는 것 같다.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모임도 쉽지 않은데 수년간 이어져 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마라톤 모임인데 두 번째 마라톤을 나가야 하지 않겠나 해서 작년 5월에 10km 마라톤에 재도전했다. 참가비 만원에 먹거리로 수육과 두부김치, 막걸리를 거의 무한리필 수준으로 제공하는 '혜자대회'였다. 이번에는 누구도 구급차에 실려가는 일은 없었다. 지난번에 못한 낮술을 한껏 마시고 얼큰하게 취했다. 그러고 나서 이 대회를 매년 우리의 공식 대회로 나가기로 약속했다. 2달 뒤 그 대회가 또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오남매 완전체가 모여서 각자 달리기를 끝낸 뒤 우리가 함께 일했던 시절을 추억하고, 오늘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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