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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토너 Apr 03. 2019

역시 뛰길 잘했어

남산 한바퀴

오늘은 출근길에서부터 퇴근하고 무얼 할까 생각했다. 봄옷을 사러 갈까, 대형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할까. 그러다가 몇 달 동안 아프던 오른쪽 무릎을 요 며칠 눌러봤을 때 아프지 않던 게 생각이 났다. 오늘은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자고 결심했다.


대망의 퇴근길, 회사 건물을 나오는데 찬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 너무 춥다. 이 바람에 달리기는 무슨, 옷이나 사러 갈까? 잠시 흔들렸지만, 항상 운동가기 전에는 오만 유혹에 휘청거리다가 막상 달리고 나면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직하게 바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PC-OFF제로 인해 퇴근 시간이 당겨져서, 집에 도착하고 옷을 갈아입고 뛰기 시작한 시간이 채 7시가 되지 않았다.'내가 막 입사했을 때는 가정의 날 빼고는 7시 반전에 퇴근하는 건 상상도 못 했어~'라고 어딘가에 뻐기고 싶지만, 그럴 후배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언제나처럼 남산도서관 앞 횡단보도를 건너서부터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차들이 쌩쌩 다니는 소월길을 뛰며 시선을 오른쪽으로 두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고 왼쪽으로 두면 남산의 우거진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안전을 위해 전면을 보지만 좌우로 시선을 분산시키며 시각적 만족감을 높이기도 한다.


3km까지는 얕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수월하게 뛸 수 있다. 하지만 3km를 지나자마자 은은하게 긴 오르막을 거의 1km 가까이 뛰어야 한다. 그래서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오르막 구간에서는 보폭을 좁혀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뛰려고 노력한다. 그리해도 숨이 차는 건 어쩔 수 없어서 뛰는 동안 가장 힘든 구간이자, 가장 페이스가 떨어지는 구간이다.


그렇게 은은한 오르막을 올라 남산 북측순환로를 들어서면 얕은 내리막 구간이 시작되어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이번 주말 여의도에서 벚꽃 축제를 한다던데, 뛰면서 보니 아직 남산의 벚꽃은 봉우리만 삐죽 나온 채, 꽃이 피지는 않았다.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벚꽃이 만개하면 점심시간에는 산책하는 주변의 직장인들로, 저녁에는 벚꽃 구경온 나들이객들로 붐빌 테다. 그전에 부쩍 뛰어둬야겠다.

 

이 북측순환로를 뛴 것만 수십 번일 텐데도 오르막에서 숨이 차서 힘겨운 느낌은 뛸 때마다 새롭다. 열심히 뛰어올라 코너를 돌았는데 또 오르막이 있을 때의 황당함이란, 뛰어도 뛰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또 그게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지겨운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북측순환로 출구로 뛰어 나가 다시 소월길로 접어들어  처음 출발했던 남산도서관 앞을 지났다.

원래는 바로 집으로 향했지만, 오늘은 운동하고 나서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따뜻한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몇달  한번 가 본 적 있는 해방촌의 술집에 가서 함박스테이크에 생맥주 1잔을 먹다가 맥주가 부족해서 하이볼까지 한잔 더 마셨다(!) 계산할 때 직원이 "러닝 하고 오셨나 봐요, 저도 러닝 좋아하는데.." 라며 말을 붙여왔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곤 달리고 나선 역시 술이죠 하며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왔다. 오랜만에 달렸는데 아프던 무릎도 아프지 않았고, 달린 보람이 있게 숨도 턱밑까지 차올랐고, 혼자 가도 편하게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을 할 수 있었다. 뛰기 전에 뛸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역시나 뛰기를 너무 잘했다. 이 맛에 뛰나 보다.

오늘 달린 기록 - 거리 8km, 시간 45분 8초, 시속 5:3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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