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벚꽃은 지금이라네

남산 한바퀴

이번 주는 부쩍 따뜻해져서 점심 먹으러 건물 밖을 나올 때마다 맑은 하늘과 따스한 봄바람에 기분이 설레었었다. 그 기운에 어제는 이런 날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며 퇴근하고 뛰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실패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이번 주를 잘 마무리 하자는 의지로 귀찮음을 이겨내고 집 도착 후 곧장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요 며칠 새 멀리서 바라본 남산의 허리께에 연분홍색 띠가 둘러진 것처럼 벚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봤는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산도서관 주변에 있었다.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도 다수 보였다. 나도 가볍게 몸을 털고 소월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오늘은 반팔 티셔츠에 얇은 바람막이, 그리고 레깅스를 입었다. 뛴 지 1km도 지나 지나지 않아 다리에 열이 올라와 레깅스가 걸리적거리기 시작했고, 2km 정도가 지나자 바람막이 마저 벗고 싶어 졌다. 이제는 저녁에 뛰더라도 레깅스 대신 쇼츠를 입어도 될 것 같다.

소월길을 따라 뛰면서 간간히 피어있는 벚꽃들을 봤다. 기대했던 만큼 많이 피어있지 않아서 크게 감흥이 없었던 탓인지, 뛰는 내내 뛰고 나서 뭘 먹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 생각으로 3km를 지나니 어느새 은은하고 긴 오르막이 시작됐다. 레깅스 탓인지, 화요일에 10km 뛴 게 아직 다리에 피로가 남았는지 다리가 무거워서 지난주에 뛰었을 때보다는 속도가 안 났다. 드디어 맞이한 북측순환로 입구에는 환하게 핀 벚꽃이 어서 오라며 나를 맞이하는 듯했다. 겨우 잦아든 오르막을 뒤로하고 숨을 고르며 벚꽃이 가득한 북측순환로를 만끽하며 뛰었다. 밤이라 화사한 색이나 느낌은 조금 덜했지만 만개한 느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이 벚꽃을 보라. 남산의 벚꽃은 아마 이번 주말이 절정일 것이다. 아직 바닥에 떨어진 꽃잎도 많이 없었고 그저 나뭇가지에 연분홍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순환로 중간에는 이렇게 전망대도 마련되어있어 뛰면서 지나가다 보면 쉬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통은 지나치는데, 오늘은 잠시 들러 이렇게 사진도 찍어봤다. 하늘이 맑으면 여기서 해가 지는 모습도 잘 볼 수 있다. 

전망대를 지나고 다시 맞이한 은은한 오르막 구간, 숨은 숨대로 차고 따로 신경 쓰지 않으면 발뒤꿈치는 또 제멋대로 바깥쪽으로 뻗친다. 발끝을 의식적으로 안으로 모아 발이 벌어지지 않도록, 허리가 너무 뒤로 빠지지 않도록, 팔이 벌어지지 않도록 기본자세를 생각하며 달렸다. 매번 같은 코스를 뛴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뛴다면 그저 다리에 피로만 주고 마는 것일 테다.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항상 생각하면서 뛰어야 하는데, 이게 참 잊기 쉬운 기본이다.

오늘은 다른 가게로 향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가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8캔을 15000원에 살 수 있는 행사를 하는 날이라 맥주 8캔을 사들고 신난 발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벚꽃 가득한 남산 한 바퀴를 뛴 뒤 후다닥 씻고 나와 좋아하는 야구팀의 경기를 보며 맥주 한잔 하는 금요일이란. 마침 방금 전 끝내기 안타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다. 정말 멋진 금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