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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토너 Apr 16. 2019

같은 달리기는 없다

남산 한바퀴

오늘은 후드티 하나만 입고 나갔는데도 낮에는 덥다고 느껴졌다. 벌써 4월도 절반이 지난 것이다. 날씨 따뜻하고 미세먼지 없고 2주 뒤에 하프대회가 있으면 뭐다? 달리기다. 퇴근길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이번 주는 교육이라 강남에서 집으로 향한다) 저 멀리서 보이는 남산이 너무 예쁜 거다. 하루 종일 열심히 공부하느라(진짜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귀찮은데 뛰지 말까' 하는 생각이 덜해서 집에 가자마자 환복하고 뛰러 나갔다.

나이키 바람막이, 뉴발란스 러닝캡, 데상트 쇼츠, 뉴발란스 양말, 아디오스 아디제로 스텔라 매카트니, 가민포러너

드디어 긴 레깅스를 벗어던지고 3부 쇼츠 안에 타이즈가 붙어있는 바지와 반팔 티셔츠, 그리고 바람막이를 입었다. 바람막이를 벗어 허리에 두르면 핸드폰을 넣을 곳이 없기에 아예 핸드폰은 두고 집을 나섰다.


남산도서관을 출발해서 소월길을 터벅터벅 뛰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들지 않아서인지 몸이 한결 가벼웠고 어떤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그런 느낌이 든 김에 시계가 알려주는 페이스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내 몸이 가는 대로 뛰고 싶었지만, 시계가 내 손목에 있으니 그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시계를 덜 보려고 노력했다.


얕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초반 3km 구간에서는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오늘은 오늘 뛴 걸 어떻게 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뛰었다. 다양한 곳을 뛰는 것도 아니고 매번 헬스장 아니면 남산 한 바퀴를 뛰는 게 다인데 뭘 쓰나 싶기도 했지만, 인스타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러너들을 보면 대회뿐 아니라 매번 연습했던 내용을 구구절절(사진이 주지만) 올리는데 나라고 못할게 뭐냐 싶었다. 매번 남산 한 바퀴를 뛴다고 해서 항상 같은 페이스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뛰는 것도 아니다. 하늘도 다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르다. 공간은 같지만 시간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 속의 나와 내 주변은 항상 변하는 것이기에 나의 달리기는 항상 새로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길고 은은한 오르막 구간을 맞이했다. 몸도 조금 가벼운 것 같으니 저번보다 평균 페이스를 좀 더 빠르게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싶어 보폭을 좀 더 줄여 회전수를 높였다. (이를 케이던스를 증가시킨다고 한다) 평소보다 숨이 조금 더 찼지만 아직 저녁의 공기는 시원해서 숨을 다 내뱉은 뒤 힘껏 들이마시니 오히려 상쾌했다.


그렇게 1km 남짓을 뛰고 북측순환로에 진입했다. 지난 금요일에 뛰었을 때는 조금 더 어둑어둑해서 만개한 느낌만 있었는데, 오늘은 해지기 전이라 꽃이 선명하게 더 잘 보였다. 바닥에 많이 떨어진 벚꽃잎 덕에 땅과 나무 전체가 분홍빛이어서 '벚꽃 엔딩' 노래가 절로 생각났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처럼 뛰는 사람들도 많았다. 화요일은 '산수주륜'이라는 마라톤 동호회 분들이 뛰는 날인데, 역시나 그분들이 단체복을 입고 뛰고 있었다. 아직도 이 분들은 화요일 저녁에 열심히 달리고 있구나. 꾸준하신 분들, 속으로 "힘!"을 외치며 땅에 떨어진 벚꽃잎을 밟으며 달렸다.


오늘은 내리막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속도를 올려 그 속도를 가지고 오르막에서 '타다닥' 치고 올라가는 느낌으로 달렸다. 앞에 뛰던 사람들을 제치는 쾌감을 느끼니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북측순환로가 끝나갈 때쯤부터 속도를 조금 더 올려 끝날 때까지 빌드업(처음에는 천천히 뛰다가 점차 속도를 올리는 것)하는 느낌으로 뛰었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목멱산방이 있던 자리 가까워져 가면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오늘은 아슬아슬하게 늦어지는 해는 못 봤지만 해가 지고 나서 붉은 기운을 어둠에게 내어주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핸드폰이 있었으면 멈춰 서서 찍었을 테지만 없으니 두 발로 뛰며 내 두 눈에만 가득 담아두다.

  

 북측순환로를 빠져나와 백범광장으로 오르는 계단길에 예쁘게 차려입고 한껏 포즈를 취하는 여자를 허리를 굽혀가며 열심히 사진 찍는 남자가 보였다. 러고 헉헉대며 뛸 게 아니라 나도 한껏 예쁜 척하며 사진 찍어야 할 계절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럴 사람도 없고 그럴 사람이 있더라도 사진은 무슨 빨리 안 뛰고 뭐하냐며 채찍질할게 뻔히 보여서 '귀엽네' 하며 지나쳤다.

오늘의 달린 기록은 거리 8km, 시간 44분 4초, 시속 5:30/km. 내가 그동안 이 구간을 뛴 것 중 가장 빠른 페이스이다. 오늘은 꽤나 숨이 차서 5:30/km 안쪽으로 끊을 수 있을까 했는데 안됐다. 그건 다음 기회로 양보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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