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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Feb 05. 2018

이제는 산산조각 나야 할 한국의  회식문화

일 끝나고 소주 한잔을 점심시간 커피한잔으로

본인이 2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거나 혹은 어느 단체에 한 번 이라도 소속되어본 적이 있다면 아마 '회식'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다들 알고 있듯, 회식(會食)이란 '모을 회' 자에 '밥 식'자가 합쳐진 한자어로,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의미다. 어린아이나 한국어를 막 배운 외국인이 언뜻 보기에는, 따뜻하고 정감 가는 단어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직장인 중에, 특히나 20대 30대 중, '회식'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지 의문이다. 표면적인 의미와는 달리 현대의 회식은 왜 그 의미가 변절되었을까?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분단된 민족에 대한 상실의 슬픔을 느끼고 화합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 탓일까? 아니면 조속한 근대화를 위해 협력을 모토로 실행했던 새마을운동의 탓일까? 혹은 금융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힘썼을 때부터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방금 나열한 역사적 순간들에 느꼈던 감정들이 시대를 살아온 국민들에게 점차 스며들어 현재의 문화를 빚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협력을 가장한 '자발적 희생'을 지속적으로 요구받아 한국인의 DNA로 변형시켰다. 그 희생이란 크든 작든, 하나의 집단을 위한 개인의 건강이나 시간 그리고 감정들의 소모 행위를 말한다. 이 위기라는 뜨거운 화덕 속에서 단단하게 굳어진 협동심이란 사기. 과연 언제까지 사람들은 뜨겁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면서 깨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아마도 추측일테지만, 이 시대를 겪은 5060 사람들이라면 더욱 어려움을 이겨낸 원동력이 인간의 협동력에 있다고 생각하며 자부하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회식은 빠질 수 없는 업무의 연장 같은 존재이다. 회식을 참가하지 않으면 사교성이 떨어지고 회사생활을 못하는 직원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심지어 인사고과에 영향을 주는 몰상식한 업체도 있다고 심심찮게 주변 지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다. 물론 2018년인 지금,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좋은 문화를 이미 형성해 선도하는 기업들도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우선 여태껏 만연하고 최악의 경우의 예를 들어 꼬집고 가고 싶다. 자극적인 음식이 입맛을 돋우는 법이니까.

출처 : http://www.asiae.co.kr/news


첫 잔은 소맥(소주와 맥주)으로 시작하는 것은 기본에, 술잔 하나로 모두가 마시는 잔 돌리기 등 과도한 음주를 조장하는 분위기는 대한민국 회식자리에서 예사다. 조금 더 심한 경우에는 신입사원들에게 저질적인 건배사를 시켜 희롱하는 경우도 있고 남자들끼리 은밀한 장소에 가 회사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따라서 2차, 3차는 자연스럽게 따른다. 주량도 다 다르고 습관이나 취향도 다 다를 텐데 왜 직원들에게 '공통된 일련의 패턴'을 강요하려 들까? 이런 것들이 정말 기업의 발전이나 개인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필자가 미국의 한 물류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회식이라고 말하기도 조금 애매하지만) 점심시간에 다 같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업무시간 외에 개인의 시간을 건드리는 것이 꽤나 민감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되도록 활용하지 않았다. 화합 면에서도 훨씬 효율적이었다. 미리 각 직원들이 원하는 메뉴를 미리 받아 예약을 해두고, 평소 점심시간 보다 조금 더 일찍 사무실을 나서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참여했으며 싫어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단순하게 직원들끼리 술을 마시는 것이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먹고 싶은 사람, 친한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금상첨화의 역할을 해 줄 재화가 '술'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싫은 사람을 향해 강요를 할 수도, 눈치나 핀잔을 줄 수도 없다. 친구가 마시라며 권유할 때와 직장 상사가 술을 권유하는 압박감은 느끼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다.

이름 앞에 붙어있는 '직급'이라는 것은 당신이 그 업무에 있어서 숙련도나 책임감을 증명해주는 명찰 같은 것이지,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내리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황금 왕관이 아니다. 오죽하면 요즘 회사에서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행동을 '마이웨이 간다'라고 표현하겠는가? 단순히 의사표시를 하는 것뿐인데도, 이미 이 단어 자체에 '원치 않는 일을 거부한다'라는 부정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다.
혹시라도 "오늘 약속들 없지?"라고 묻는 답정너 관리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반드시 사고의 변화를 주었으면 좋겠다. 보통의 직원들이 원하는 바는 자기 돈으로는 못 먹는 안주에 사케 한 잔이 아니라 일과 자기 삶의 균형이다. 일 끝나고 집 소파에 누워 츄리닝 차림으로 TV 보며 마시는 맥주가 값비싼 이자카야에서 먹는 사케보다 더 값지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 기업에 화석처럼 퇴화되어 굳어진 회식 문화를 산산조각 내야 할 타이밍이다. 아니 어쩌면 마지노선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트렌드를 읽고 실천하는 판단력이 조직의 흐름을 바꾸고, 또 우습겠지만 당신의 호칭조차도 '우리 부장님'이냐 '부장 새 X'이냐를 결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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