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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Feb 14. 2018

칼퇴근을 위한 눈치게임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퇴근을 위한 격한 정신적 몸부림



오후 5시 50분. 퇴근하기 10분 전이지만 사무실은 고요하다. 그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와 전화기의 벨소리만 울릴 뿐, 어느 누구에게도 퇴근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진작에 할 일을 끝낸 직장인 A 양은 자리를 정리하지 못하고 그저 눈치만 볼 뿐이었다.


오죽하면 워라밸이라는 말이 요즘 들어 이슈로 떠오를까? 워라밸은 Work and Life Balance를 한국어 발음으로 줄인 말이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영국이고 차후 미국 같은 서양 국가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기는 이미 2000년에 진입하기도 전에 거론되던 이슈였다.


출처 : https://www.shutterstock.com


대한민국에서는 한참이 지나서, 2016년이 돼서야 일반인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단시간에 물리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한국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함을 여러 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성숙함의 가장 포괄적이면서 단적인 예는 '개인의 희생을 무조건적으로 감수하고 집단을 발전시켜야 된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흔하게 수용되는 인식이 업무를 마무리했지만 혼자 퇴근하면 죄책감이 드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상사가 쳐다보는 눈빛은 마치 "나는 남아서 일을 하는데 너는 퇴근을 하겠다고?"라며 암묵적인 협박을 하는 것 같다.




"어느 누구라도 당당하게 요구했을 것이다. 나는 내 할 일 끝냈다고,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말이다"






만약 업무량이라는 게 1/n로 정확하고 공평하게 등분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어느 누구라도 당당하게 요구했을 것이다. 나는 내 할 일 끝냈다고,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말이다. 당신은 주어진 할당량을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한 느림보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보통 젊은 사람들과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분'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동료가 고생하면 도와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혹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자기밖에 모르니 원 쯧쯧"와 같이 혀를 찰 것이다.


물론 도와줄 수 있다. 우리는 생각을 하고 협동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방향이 아래에서 위로, 즉 언제나 일방통행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상사들은 본인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아랫 직원들을 버리고 퇴근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비아냥대는 것이 현시대의 크나큰 재앙이다.


출처 : https://www.bankrate.com/finance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원격수술까지 가능하게 한다는 5G가 통용되면 모든 회사가 최소 한 주에 반은 재택근무로 전환되었으면 한다. 필자가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직장생활의 주된 스트레스 요인인 출퇴근 시간이나 직원들과의 불필요한 관계, 회식 등이 해소될 수 있다. 물론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전에 작성된 편 중 「신입사원은 왜 일찍 출근해야 할까?」 에서도 언급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출근은 빠를수록 퇴근은 늦을수록 성실한 직원이라는 편견이 익숙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제 그만 오염된 사상을 소독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오해하지 말자. 필자도 급한일이 있을 때 추가근무를 하는 것은, 직원으로서의 책임감임을 잘 인지하고 있으니까. 절대로 아예 야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허나 일련의 규칙이라는 것은 최소한 상황에 맞게, 앞뒤가 맞게끔 불필요한 가지는 쳐내고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일이면 가장 큰 명절인 설날 연휴의 시작이다. 설날이랍시고 30분 일찍 선심 쓰듯 퇴근시켜주는 그대가 가증스럽다. 그동안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 했을 때의 시간들만 합쳐도, 1년에 최소 10일 이상의 연차는 쌓였을 직원들이 허다하다. 이제는 누가 먼저 일어나는지 살피는, 불편한 눈치게임은 그만두고 자연스럽게 5분 전부터 자리를 정리하는 문화가 정립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일을 위해 숨을 쉬고 살아가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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