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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Feb 22. 2018

부장님, 365일 내내 바쁘면 연차는 언제 쓰나요?

사용자와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 간 줄다리기


지방의 C 기업에 다니는 Y 씨는 오는 5월 가족들과 유럽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연차를 붙여 쓰고 싶었지만 부족한 인력으로 회사는 늘 바빴다. 그는 오늘도 부장님의 눈치만 보며 고민하던 중, 별 다른 사유 없이도 자유롭게 휴가를 쓴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부러움에 빠졌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 쉴 권리. 한국 사회는 이 기초적 권리가 결여되어 있는 집단이 많다.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근로시간이 긴 나라이며 과로사로 숨을 거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여전히 불평하듯 툴툴거린다. 권리를 얻기 위해선 의무를 다 하라고.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한 여행을 함에 있어서 '권리를 얻기 위해선 의무를 다해라'라는 말은 중요한 논지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본인의 요구사항만 보채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 마치 롤리팝을 사달라고 울어대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원래 인간은 자신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이기주의의 동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과연 노동자들은 적절한 의무를 행하지도 않고 그저 휴식을 달라고 징징거리는 걸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 하는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 얼마나 더 많은 의무를 짊어져야 내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걸까?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출처 : http://icetoday.net/2017/06


옛날부터 사용자는 노동자로부터 생산량의 최댓값을, 노동자는 사용자로부터 임금의 최댓값을 원해왔다. 추구하는 바는 서로 상충된다. 이들은 나름 깊이 생각하고 각자 입장을 전달하며 교섭을 했을 테지만, 그 목적을 추구하는 이해당사자들 사이는 공정한 거래를 할 만큼 평등하지 않다는 게 오점이다.  


예를 들어 볼까? 요즘 20대들은 5060 기성세대들과는 180도 다르다. 승진이 늦더라도, 돈을 조금 적게 받더라도 내 시간을 확보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업무가 끝나고 개인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적절한 업무량과 휴가의 자율성, 그리고 대체 가능한 인력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게 바로 사용자가 조절하고 제공해야 할 '의무'다.


연차 한번 공휴일에 붙여 쓰려고 하면 "oo 씨가 그 날 쉬면 그 업무는 누가 하나?"라고 되묻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대처할만한 방법을 강구하고 원활히 운영하라고 사용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왜 본인이 불리할 때만 결정할 권한을 떠 넘기시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용자(혹은 관리자) 대부분이 경영학원론을 너무 열심히 들으셨는지, 한정된 인원의 직원을 뽑아 한계에 도달하는 업무량을 준다. 마치 필요하면 자신의 피를 뽑아 다시 수혈하라는 것 같다.


출처 : http://etc.usf.edu/clipart/70500


마르크스는 말했다. 자본이 노동을 착취한다고. 그의 철학에 동조하는 것인지 사용자들은 이 논리에 충실하다. 본래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는 마치 시소 타기와 같다. 한쪽이 재미를 보기 위해서는 반대편 사람이 발을 굴러주어야 가능한 시소 타기. 그러나 한쪽에 무게가 치중된다거나 과한 욕심을 부린다면 그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여기서 고민해 볼 사항이 있다면, 과연 현대사회의 시소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가?  


여전히 정해진 규제, 즉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노동자를 괴롭히려는 얄팍한 수. 도대체 그들이 재차 강조하는 의무는 무엇일까? 법이란 인간답게 살고자 만든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우리는 조금 더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우리는 이미 해야 할 의무, 그 이상을 해내고 있다. 최소한 쉴 수 있는 자리는 마련해 주는 게 도리 아닐까?


부장님, 맨날 바쁘면 연차는 도대체 언제 쓰나요?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몇 안 되는 구독자 여러분,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 여러분.
우선 소중한 시간을 내어 저의 글을 읽고 작게나마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서란 굉장히 능동적인 행동입니다. 어느 한 포인트에서라도 흐름이 끊기면 쉽게 포기하게 되죠.
좀 더 자극적인 영상 매체들 보다는 다소 불리한(?)것 같습니다.

그런 뜻에서 완독을 하고 공감을 해주신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입니다.


직장인들은 주로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직장상사나 회사 욕을 하곤 하죠. 그 정도가 심하든 약하든 말입니다.「직장생활 탄원서」라는 매거진은 이러한 측면에 영감을 받아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공감도 하고, 함께 욕도 하며 언젠가는 더 나아질 미래를 꿈꾸도록 말입니다.


9988이란 말이 있습니다.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제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회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알 만큼 규모가 클 수도, 동네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회사도 있습니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파생된 각각의 사내 문화가 있을까요?


사실 이 글의 존재와 목표는 이율배반적입니다.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문화의 근절을 추구하지만 그게 없으면 매거진도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감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간혹 소재가 진부할 수도 있고, '아직도 이런 회사가 있어?'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쓰고 있습니다. 설사 그런 회사 혹은 부서 혹은 상사가 이 땅에 단 하나라고 하더라도, 소개한다는 기분으로 몇 자 적어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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